COLUMN
새로운 세대문화, 멘헤라
관리자2024.02.10
최근 일본의 멘헤라 문화가 국내 청소년들 사이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틱톡과 같은 SNS에서는 ‘#멘헤라’의 해시태그를 단 동영상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으며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 모여든 청소년들은 그 일대를 ‘멘헤라 공원’이라 이름 짓고 자신들만의 문화 공간을 짓고 있다. 이와 관련한 신문 기사도 여럿 나올 정도로 멘헤라 문화는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와는 대조적으로 주변에서 멘헤라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심각한 우려와 걱정을 제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조롱과 비하의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멘헤라 문화는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을까. ‘멘헤라’는 일본의 인터넷에서 파생한 신조어로 ‘정신 질환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를 의미한다. 원래는 2채널이라고 하는 인기 포털 사이트의 ‘멘타루 헤루스 (Mental Health, 정신 건강)’ 게시판을 자주 이용하는 유저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하였다. 그런데 멘헤라라는 발음이 귀엽고 친근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멘헤라를 자칭하면서 2010년대 초반부터 멘헤라는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에 현재에는 특정 사이트를 이용하는 유저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마음에 그늘이 진 이들’을 의미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멘헤라에서 찾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에서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멘헤라를 자처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심리에 어울리는 의상과 화장을 하고 중2병 가사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그 동영상을 SNS에 올린다. 또한 여기에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과 “피엔(ぴえん, 흐앙, 귀여운 울음 소리)”이라는 의성어를 덧붙여 인터넷에 퍼트린다. 그뿐만 아니라 유아퇴행 욕구를 자극하는 산리오의 캐릭터와 “울적함이 아름다운 거겠죠”라고 노래 부르는 아이돌을 정면에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이 하나둘 축적되면서 과거와 차별되는 세대 문화인 멘헤라 문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멘헤라 문화를 즐기는 청소년들 가운데 일부가 가출해 각종 범죄에 연루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정불화나 집단 괴롭힘 때문에 가출한 청소년들은 도쿄 한복판에서 함께 노숙하면서 자해 소동을 벌이고 술과 담배에 빠지고 성매매나 절도에 손을 댄다. 그런데 이들이 평상시에 멘헤라 패션과 메이크업을 하고 있기에 마치 멘헤라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것처럼 그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에 보도된다. 그 결과, 심각한 사회문제로 멘헤라가 언급되고 멘헤라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멘헤라 문화가 유행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도 행여나 이러한 가출 청소년 문화가 한국에도 퍼질까봐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출 청소년들이 탈선하는 근본 원인은 그들을 거리로 내몬
가정과 사회에 있기에 멘헤라 문화의 악영향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소통 창구로서 멘헤라 문화가 제 역할을 하는 점을 이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멘헤라 문화는 안으로는 기성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을 이어주고 겉으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감정이 표출하는 출구가 되고 있다.
물론 멘헤라 문화는 현실 도피의 색채가 강하기에 과거의 청년 문화와는 결을 달리해 수많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패션과 퍼포먼스에는 같은 세대를 매료시키고 기성 문화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깔려 있다. 중요한 건 멘헤라 문화에 담긴 메시지를 사회 각계각층에 전달해 대화를 활성화하는 일이지, 날선 비난과 경계심으로 대화를 단절하는 것에 의미는 없다.
다수와 표준, 정상성의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성과 미래, 자유를 향해 열린 사회가 되기 위해선 주변에 동화되지 않는 비주류 문화를 귀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멘헤라 문화에 귀를 여는 것에서 그 첫걸음을 떼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