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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신곡―CELL OF EMPIREO―>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김태은2026.01.29

 

 

<사진 1> 세포신곡 공식 표지 이미지

 

1. 서론

 

<세포신곡CELL OF EMPIREO>(이하 세포신곡)2018년 발매된 1인 제작 쯔꾸르 게임이다. 쯔꾸르 게임이란 주식회사 Gotcha Gotcha Games’에서 개발한 게임 엔진 ‘RPG Maker’ 시리즈로 제작된 게임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일본어로는 ‘RPGツクール, 해당 발음을 그대로 따와서 쯔꾸르 게임으로 부르게 되었다. 쯔꾸르 게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탑뷰(Top view)의 픽셀 그래픽이 특징적이다. 쯔꾸르 게임의 대표작으로는 아오오니(2004), ib(2012), 살육의 천사(2016)를 들 수 있다. 탐색×정보 수집형 서스펜스 장르인 해당 게임은 오토와 탐정사무소의 조사원으로서 일하는 주인공, 아토 하루키가 기억을 잃은 지인 시나노가 실종된 것을 계기로 그를 찾기 위해 신흥 종교 단체, ‘지고천 연구소부근을 조사하다가 정신을 잃고 납치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작성한 신곡에 기반한 탄탄한 설정과 E부터 시작하여 D, C, B, A, S와 진엔딩에 해당하는 S+까지 총 7개에 달하는 다양한 엔딩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냈다. 현재는 DLC에 해당하는 <이소이 사네미츠의 기록>과 본편과 DLC의 정보를 정리한 <은자의 공간>, <세포신곡>의 후속작의 예고편에 해당하는 <막간> 등 다양한 외전 게임이 나왔으며, 일본의 가도카와 산하의 미디어 만화 잡지 월간 코믹 진에서 코믹스 또한 연재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단순한 신흥 사이비 종교 단체로부터의 탈출을 목표로 하는 호러 장르의 게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이 게임은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출을 위한 과정에서 아토는 자신이 이 단체에 접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를 찾기 위해 종교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반년간의 기억을 잃은 지인인 시나노 에이지의 기억을 되찾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번 리뷰글에서는 시나노라는 캐릭터를 통해 와 기억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접근

 

나는 누구인가. 이는 오래 전부터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어 온 주제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시작해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존재 이유와 라는 개체가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많은 논의가 오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된 논의는 라는 개인과 주체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존 로크에 의해 경험론이 본격적으로 부상하였다. 경험론이란 인간의 지식은 후천적으로 이루어지는 감각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로크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라는 개념을 들어 경험론을 펼쳤다. 이는 라틴어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석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천적으로 인간은 새하얀 백지와 같은 상태이며, 경험으로서 그 백지를 채워나간다, 이를 통해 지적 능력이 향상되고 개인의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과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신체라는 물리적 개체가 존재한다 하여도 그것에게 고유성을 부여하고 주체성을 부여할 기억, 경험이 없으면 그것은 무언가의 개체라기보다 그저 하나의 물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기억을 되찾게 되고, 그로 인해 자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어떤 기억을 나의 정체성으로서 받아들어야 하는가? 최근의 많은 콘텐츠들은 기억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속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감정들의 주인, 라일리의 기억은 라일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영화 헨리의 이야기는 기억을 잃은 변호사 헨리 터너가 새로운 자신을 찾고 냉혈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바뀌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 <세포신곡> : 기억을 통해 를 되짚어가는 길

 

<세포신곡> 또한 기억을 통해 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포신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는 것은 지고천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는 세포인 지고세포이다. 이 세포는 세포를 지닌 자, 숙주의 의지를 읽고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돕는, 만능세포보다도 우월한 세포로 언급된다. 이 세포는 소유자의 굳은 의지를 읽어 불을 만들어내거나 괴력을 가지게 하는 등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고천 연구소는 이 세포를 성공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여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하였다.

시나노는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기억을 잃은 캐릭터이다. 기억을 잃기 전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여성 아카네를 잃고 그녀가 남긴 반려견 티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고천 연구소에서 지고세포의 이식 실험을 받은 개가 탈출하여 시나노와 티나가 산책하던 공원을 습격하였고, 시나노를 보호하던 티나마저 개의 공격으로 인해 죽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나노는 그 개가 가지고 있던 지고세포를 받게 되고 사건의 충격으로 아카네, 티나와 함께하고, 잃은 기억을 포함해 반년간의 기억을 잃는다.

반려견을 키웠던 경험이 있음에도, 기억을 잃은 뒤의 시나노는 개를 무서워한다. 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티나를 떠올리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과 그들을 잃은 고통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행동에 시나노는 고통스러워한다. 아토는 그를 다독이며 너는 자신을 되찾았어라고 말하지만 시나노는 그를 부정하며 자신은 되찾은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재의 자신은 많은 희생과 아카네와 티나, 그리고 실험체였던 개와 기억을 잃어버렸던 의 전부를 가지고 존재한다고. 기억을 잃기 전의 와 기억을 잃은 ’, 기억을 되찾은 ’. 이 모든 요소가 모여야만 현재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건 돌아오지 않아.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아. 흘러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없어. 과거는 떼어놓는 것도, 되찾는 것도 절대 불가능해요.” 작중 시나노가 기억을 되찾고 괴로워하던 중 말한 대사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되찾을 수 없으며,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도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극복한 시나노는 자신을 보호하려했던 티나의 의지와 아토를 보호하고자 하는 현재의 자신의 의지를 통해 보호막이라는 능력을 발현하여 다 함께 지고천 연구소를 탈출하고 미래를 향하게 된다.

시나노의 말대로 과거는 떼어놓을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요소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도 같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과거에 기반하여 현재를 변화시킴으로서 미래를 향하는 존재이다. 과거를 계속해서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성찰할 과거가 없다면 현재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존재할 수 없다.

<세포신곡>은 과거를 성찰하고,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지고세포로서 빗대어 표현한다. 자신이 과거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생겨난 의지는, 미래를 바꾸어나갈 능력으로 발현된다. 본 리뷰에서는 시나노의 경우만을 살폈지만, <세포신곡> 속 지고세포를 받은 캐릭터들은 모두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로 능력을 발현한다.

나는 어떤 세포들을 받아들여온, 어떤 일들을 겪어온 사람이며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을까. <세포신곡>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게끔 만든다.

 

 

4. <세포신곡> 속 철학과 게임의 관계

 

한편으로는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세포신곡>은 얼핏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음에도, 어떻게 대중성을 얻은 인기 게임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바로 해당 게임에서 다루고 있는 철학의 주제가 게임의 스토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포신곡>을 비롯한 많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캐릭터를 생성하거나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혹은 3인칭 시점에서 캐릭터의 행동을 지정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서사와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과 비슷하다.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사건을 겪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거나, 공감하거나,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플레이라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성립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사건을 제 3자의 시선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게 되는 다른 콘텐츠들과는 달리 게임은 직접적으로 게임의 스토리에 개입하여 플레이어를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하고, 게임 내 사건들에 대해 마치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이 가능하게 한다.

게임의 철학적 물음은 주로 스토리 진행과 플레이어의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 그 예로 <언더테일>(2015)를 들 수 있다. <언더테일>은 괴물들이 갇힌 지하세계 속에 빠진 인간과 인간의 영혼을 이용해 결계를 깨뜨리고 지하를 빠져나가려는 괴물들의 대립관계를 배경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인간 캐릭터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 드는 괴물들과의 전투 속에서 [싸움][자비]라는 선택지를 제공받는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 진행 방향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모든 괴물을 죽이지 않는 이른바 불살 루트에서는 모든 괴물과 친구가 되어서 플레이어가 희생하지 않으면서 결계 또한 부수는 방법을 찾아 끝내는 지하를 탈출한다. 그러나 모든 괴물과 싸워 죽이는 몰살 루트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모든 괴물을 죽이고 지하를 탈출한다. 모든 괴물을 죽인 데이터는 게임 속에 영구히 기록되어, 그 이후에는 몰살 루트를 진행한 세이브 데이터를 삭제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불살 루트를 진행할 수 없게 되고 또다시 몰살 루트를 진행한 경우에는 엔딩의 대사 스크립트가 달라진다. <언더테일>은 이와 같이 타인이 나에게 폭력을 가하고 죽음을 종용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물음을 던진다. 어떤 루트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캐릭터들의 대사 및 서사는 당시 <언더테일>을 플레이하던 수많은 유저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 결과 <언더테일>은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회고되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세포신곡>은 플레이어가 3인칭 시점에서 아토 하루키라는 캐릭터를 조종하며 진행된다. 스토리를 진행하며 밝혀지는 아토와 시나노의 과거사,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는 플레이어를 게임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들며, 이들이 제시하는 철학적 질문은 플레이어에게 더 직접적으로 와닿게 된다.

게임의 스토리 속에 절묘하게 녹여놓은 철학적 메시지는 게임의 서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며,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 것보다도 더 쉽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는 또한 캐릭터들의 서사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게임의 특성과 맞물려 플레이어들이 더욱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로서 작용한다. 필자가 지금 <세포신곡>에 대한 고찰을 작성하고 있듯이 말이다. 필자가 처음 <세포신곡>을 플레이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새롭게 플레이할 게임을 찾던 중에 발견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즐기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캐릭터에 이입하여 스토리를 보고 공략을 검색해가며 진엔딩을 맞이한 뒤에는 어느새 이 게임의 2차 연성을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포신곡>이 던지는 물음에 맞추어, 단순히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며 살까, 가 아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이며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추구해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 것도 이 게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 철학적인 질문을 도입하는 것은 이와 같이 게임을 단순한 오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게임이 끝나고 나서도 큰 여운을 남기고 플레이어 본인이 그 주체가 되어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고심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세포신곡>은 해당 작품 또한 플레이어의 경험으로 간주하여 게임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과 게임의 여운의 효과를 더욱 증가시킨다. 다음은 진엔딩을 본 후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다음 나오는 문구이다.

 

그래요. 이 이야기는 희극(픽션)입니다

 

하지만 경과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이 이야기의 존재가

좋든, 나쁘든

 

당신이 살아가는 과정이

한 가지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설령 이후에 당신이 잊는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당신을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로서 사랑을 담아

 

필자는 <세포신곡>의 게임 외 요소 중에서는 해당 문구가 <세포신곡>을 플레이 중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해당 문구에서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모두 픽션임을 밝히는 내용과 동시에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들에 대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마저 지금의 플레이어, 즉 게임을 플레이한 의 경험임을 일깨우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경험하였으며 이제는 <세포신곡>의 엔딩을 맞이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 것이지만 <세포신곡>을 플레이하고 그 속의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의 석판에 세포신곡이라는 하나의 문구가 또 추가되는 순간이다.

 

 

5. 결론

 

기억을 잃은 캐릭터가 자신의 과거 행적이나 지난 날의 과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하였던 헨리의 이야기같이 말이다. <세포신곡>에서는 기억을 잃은 캐릭터인 시나노 에이지가 기억을 되찾음으로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주인공과 함께 지고천 연구소를 탈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극복한다. 이를 통해 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캐릭터 중 하나가 되거나 그들의 행동을 선택하며 게임에 몰입하도록 한다. 게임 속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있어 게임을 통해 오락 뿐만 아니라 철학적 견해를 넓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세포신곡>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플레이어의 즐거움과 철학적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두 요소를 모두 잡는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포신곡>이나 <언더테일>말고도 게임을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게임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여러분도 부디 이러한 게임을 많이 접하고, <세포신곡> 또한 플레이하여 자신의 석판에 더욱 많은 경험을 남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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