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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속 좀비를 중심으로

변승호2025.02.25

 6개월 전쯤에 전공수업의 일환으로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2012)라는 제목의 영화를 감상하였다.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이 영화에서 좀비라는 개념이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 심지어 예고편에서도 좀비는 등장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전부터 좀비물들(<워킹데드><새벽의 저주>, <좀비랜드>)을 좋아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계속하여 등장한 좀비에 대해 흥미를 느껴 다음 글을 작성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좀비를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을 참고하여 필자 나름대로 생각을 서술해 보았다.

 

 

그림 1,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포스터

 

영화를 보기 전 처음 제목에서부터 언급되는 키리시마라는 이름의 인물이 주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줄 알았지만, 이 영화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주인공으로 확실히 정해지지 않고 여러 주요 인물들의 시점에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역순행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군상극이다. 영화 속에서 키리시마의 행적은 그가 갑작스럽게 배구부 활동을 그만두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 심지어 영화 내내 키리시마의 모습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키리시마로 추청되는 인물이 잠깐 비추는 것 이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키리시마는 작중 학교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배구부의 주장을 맡고 있으며, 여러 학생들이 의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키리시마가 모종의 이유로 주위사람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고, 이 사건을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는 학교가 아무리 실제 사회보다도 작은 사회라 하여도 개인의 능력, 재력, 외모 등등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학교 밖의 사회처럼 학교라는 장소 또한 이와 비슷한 기준들로 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지위가 생긴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좀비라는 개념은 꽤 많이 등장하며 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먼저 이 작품에서 영화부장을 맡은 마에다 료야와 그의 부원들은 키리시마와 같이 영향력 있는 존재, 흔히 말하는 인싸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림 2, 부실에서 부원들과 만화 이야기를 하는 료야(왼쪽 두 번째) / 좀비 분장을 한 부원들

 

 

이들은 키리시마가 사라진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좀비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목표이며 작품 속에서 좀비로 분장하거나 좀비를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는 민족이나 집단을 좀비로 그리는 것은 확실히 죽여도 좋은’, ‘지저분한’, ‘한심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그 집단에 부여하는 프로파간다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영화부장과 그 부원들이 무시당하는 모습이나 한심하다고 하는 장면들이 그들이 스쿨 카스트에서 좀비와도 같이 비친다고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영화 속 그들에게 한심한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고 해석해 볼 수가 있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염되는 바이러스처럼 관객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비 프로파간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영화에서 료야는 좀비영화 촬영을 위해 8mm 필름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이는 필름의 질감이 거칠기 때문에 옛날 영화에서 좀비 영화를 촬영하는데 많이 사용하였던 종류의 카메라이다.

 

 

그림 3, 8mm 비디오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있는 료야

 

 그러나 이러한 카메라를 가지고 영화부에 게 로맨스 극본의 촬영을 강요하는 선생의 모습 또한, 개개인의 개성을 보지 않고 그저 주입식대로만 교육하는 현 학교의 주소를 비판하는 것 같았다

 또한, 이들은 키리시마와 같은 스쿨 카스트 상위권 인물들과는 다르게 최근 유행을 따라가기 보단 고전 영화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현재의 미디어보단 과거에 더욱 빠져있는 그들은, 영화의 후반 부분 옥상에서 스쿨 카스트 상위권 인물들과 갈등이 생기는 장면에서 그들로 비유된 좀비의 유형에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마치 조지 A. 로메로의 좀비와도 같이 발이 느리고, 어딘가 썩어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여기서 조지 A. 로메로란 미국의 영화감독으로 현대 좀비 영화의 아버지이자, 호러 영화의 거장이다. 좀비 영화 계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조지 A.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기존의 주술과 관련된 부두교 좀비를 현대의 죽었다가 부활하고, 전염되며 인육을 먹는 좀비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의 좀비와는 달리 조지 A. 로메로의 좀비는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이, 느리고, 썩어있고, 멍청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림 4, 썩어있는 좀비처럼 묘사된 부원들 / 카스트 상위 인물들이 현대에서의 좀비처럼 달리는 모습

 

이러한 모습은 이전 장면에서 스쿨 카스트 상위 인물들이 옥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21세기의 발 빠르고, 썩어있지 않은 좀비처럼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서로 다른 두 좀비 포맷이 한 작품,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는 유행에 민감하며 라인이나 SNS 같이 빨리빨리 변화하는 소셜 미디어에 대응하며 공기를 읽는 것이 중요한 학교의 모순적인 혼란스러움을 잘 나타낸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전형적인 좀비 포맷만이 쓰인 것은 아니다, 조금 전 서술한 옥상에서의 갈등이 끝나고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 중 스쿨 카스트 상위에 있는 히로키와 영화부장 료야 사이의 사건에서 우리는 기존의 좀비 포맷과는 다른 좀비 포맷을 살펴볼 수 있다. 난장판이 된 촬영지와 물건들을 쓸쓸히 정리하던 료야에게 히로키가 료야의 렌즈후드를 건네준다.

 

 

그림 5, 료야에게 카메라 후드를 건네주는 히로키 / 히로키가 비디오 카메라로 료야를 촬영하는 모습

 

 그리곤 카메라로 료야를 촬영하며 서로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기존의 좀비에게 공격당하거나 서로 죽이기만 하던 좀비 포맷과는 달리 조나단 레빈 감독의 영화 웜 바디스와 같이 좀비와 인간이 친구가 되거나 오히려 좀비가 인간보다 낫다고 하는 새로운 포맷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서로를 좀비처럼 바라봤던 료아와 히로키가 카스트 차이를 뛰어넘어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은 것과 아직 자신에 대해 방황 중이었던 히로키와 달리 자신의 에고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한 료야의 모습이 히로키에 입장으로 영화를 감상했을 때, 어쩌면 좀비는 이제는 우리보다 열등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키리시마 안에서 좀비와 관련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좀비라는 것이 키리시마 속에서 단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갈래가 뻗어 있는 상징이라는 것을 확인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키리시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좀비가 나오는 창작물 속 좀비의 의미를 탐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

 

 

 

참고문헌  

[단행본]

후지타 나오야, 좀비 사회학, 요다, 선정우(), 2018

 

[사진 자료

그림 1 - 예스24,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https://m.yes24.com/Goods/Detail/8761463  

그림 2, 3, 4, 5 -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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