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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가 정의한 프리미엄

최찬영2026.01.30

 맥주를 고를 때 흔히 ‘어떤 브랜드가 유명한가’, ‘어떤 맛이 강한가’ 등을 먼저 떠올려보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맥주 소비의 순간을 떠올려보면, 훨씬 모호하고 애매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 ‘이 순간에 어울리는가’, ‘이 분위기에 잘 맞는가’ 등과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 개인의 독단에 따르면, 산토리 맥주를 마실 때 느끼는 인상이 바로 이 지점에 가깝다고 느낀다.

 

 산토리는 일본 주류 산업에서 독특한 길을 걸어온 기업이다. 1877년에 첫 제품을 출시한 삿포로와, 1년 후인 1888년에 기린 맥주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등장한 기린이 이른 시기부터 맥주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면, 산토리는 1963년에 무사시노 맥주 공장을 완공하며 맥주 사업에 뛰어든 후발 주자이다. 산토리의 창업자인 토리이 신지로는 “서양의 술을 일본인의 감각과 입맛에 맞게 만든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야마자키 위스키와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에 담긴 산토리의 철학을 맥주 사업에도 적용시켰다.

 산토리가 맥주 산업에 진출한 1963년, 당시 일본의 맥주 시장은 이미 강력한 경쟁 구도가 형성된 상태였다. 기린, 삿포로, 아사히의 3강 체제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산토리는 이 거대한 벽에 도전하는 무모한 후발 주자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토리가 선택한 전략은 유통 경쟁이나 가격이 아닌, 이미지의 차별화와 품질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3년에 출시된 프리미엄 몰츠였다. 프리미엄 몰츠는 산토리가 맥주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었는데, 기존의 대중 맥주보다는 값이 비싸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프리미엄’ 맥주로써의 명확한 위치를 부여받고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그림 1.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포스터

 

 프리미엄 몰츠는 100% 몰트 맥주로, 일반 라거에 비해 원재료와 공정 과정에서의 차별성을 갖고 있다. 맥주 제조의 기본 원료인 몰트는 보리를 발아시켜 건조한 것으로, 몰트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풍부한 맛과 바디감, 깊은 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유럽산 아로마 홉과 ‘천연수’라고 부르는 엄선된 물, 그리고 양조 과정에서의 시간과 온도 관리를 강조했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하게 기술적인 정보라고 보기보단, 프리미엄 몰츠가 어떤 방향성을 지닌 제품인지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본 맥주 시장을 지배했던 기린 라거, 아사히 슈퍼 드라이, 삿포로 블랙라벨은 몰트 외에 옥수수, 쌀, 전분과 같은 부원료를 섞어 원가를 절감하고, 깊은 향보다는 깔끔한 맛을 내는 가볍고 청량감 있는 맥주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그에 반해, 토리이 신지로의 철학이 담긴 유럽 전통 방식의 100%몰트 맥주는 일본 맥주 시장 내에서 어느정도 분명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프리미엄 몰츠는 출시 이후에 ‘프레모루(プレモル)’ 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중화에 성공했는데, 이는 단순히 가격이 비싼 제품을 넘어 지불한 비용만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고품질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강력한 품질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볍고 청량감 있는 맥주를 선호하던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 몰츠는 그저 값이 비싼 프리미엄 맥주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패 없는 만족을 얻고 싶을 때 선택하는 확실한 보상의 수단이 된 것이다. 결국 프리미엄 몰츠가 재정의한 프리미엄이란, 가격이나 희소성을 내세운 프리미엄 전략이 아니다. 산토리가 말하는 프리미엄은 언제 어디서 구매하더라도 기대치에 부합하는 최상의 맛을 선사한다는 품질에 대한 신뢰와 그 선택이 나에게 확실한 만족감을 줄 것이라는 안정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엄 몰츠가 일본 맥주 시장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브랜드 전략, 혹은 이미지 메이킹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프리미엄 몰츠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어떠한 태도와 환경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이해할 때, 산토리가 맥주를 어떠한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토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게 된 계기 역시, 산토리 맥주의 광고나 제품 설명이 아닌, 산토리의 공간을 직접 방문한 경험이었다. 

 

 

그림 2. 산토리 규슈 구마모토 공장

 

 산토리가 보여주는 태도인 ‘원료의 근원인 자연에 대한 집착’과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제조 공정의 공유와 체험’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구마모토에 위치한 산토리 규수 구마모토 공장에 방문했다. 공장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맥주 그 자체의 것보다도 천연수라고 하는 물에 대한 강조였다. 공장 내에서는 원료, 공정에 대한 설명에 더불어 구마모토 지역의 물이 선택되는지를, 자연 환경이 맥주 제조 과정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맥주 제조 과정의 기술적인 설명보다도, 맥주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천연수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는 맥주 회사는 산토리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맥주 회사가 효율적인 대량 생산을 위해 수질을 조정하는 기술력에 집중할 때, 산토리는 물에 맥주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물이 있는 곳에 공장을 짓는 고집을 보여주고 있다. 산토리는 단순히 맥주 제조를 위한 수자원 확보를 넘어 천연수의 성지라는 이름으로 직접 구마모토 인근의 숲을 가꾸고 하천 유역의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활동을 병행하며 제조 원료의 청결함을 강조하는 다른 맥주 회사와는 다르게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서 얻어낸 귀한 재료를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 3. 산토리 마스터즈 드림 하우스 나고야

 

 산토리의 이러한 태도는 나고야에 위치한 산토리 마스터즈 드림 하우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산토리의 일반적인 직영점과는 다른 공간이다. 단순히 산토리 맥주를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산토리 맥주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마스터즈 드림 제품군을 위해 설계된 전용 플래그십 스토어이기 때문이다. 일반 직영점이 산토리 주류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공간은 산토리 양조가들의 집념이 담긴 꿈의 맥주를 가장 완벽한 상태로 구현하는 일종의 체험형 전시장에 가깝다. 이 공간에서 강조되는 점은 ‘최고의 맥주’ 라는 프리미엄 맥주의 수식어보다도, 한 잔의 맥주가 소비자 앞에 나올 때까지의 과정과 그 완성도를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다른 일본 맥주 회사들도 맥주의 품질 관리에 공을 들이지만, 산토리는 이를 ‘神泡(신의 거품)’이라는 독자적은 브랜드로 차별화하여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맥주를 따르는 행위를 넘어 거품의 밀도와 잔의 온도, 맥주와 거품의 완벽한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전용 디스펜서와 잔을 사용하는 모습은 다른 일본 맥주 회사에서 보기 힘든 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일본 맥주 회사가 매장의 자발적인 관리에 의존하여 직영점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면, 산토리는 마스터즈 드림 하우스를 통해 본사가 정의한 완벽한 한 잔의 기준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규격화하여 시각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 체계는 소비자에게 강력한 신뢰를 체감하게 한다.

 

 위 경험들을 통해 느낄 수 있던 점은, 산토리의 ‘프리미엄’ 개념이 절대로 추상적인 마케팅 문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환경을 중시하며 운영하는 공장, 산토리만의 디테일을 강조하는 제공 방식이나 공간 구성은 모두 하나의 방향성 아래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꼈다. 산토리의 맥주는 그저 빠르게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모든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사실 이 지점에서, 산토리의 도전정신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토리이 신지로의 ‘やってみなはれ(한번 해봐라)’ 와 같은 챌린지 정신처럼, 산토리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온 기업이지만, 그 결과물은 마냥 신비롭고 과장되지 않는다. 대신 안정적이고, 소비자들의 지속 가능한 선택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남는다. 이것은 단기간 주목을 얻는 것보다도, ‘프리미엄’의 새로운 정의 아래에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는 방식을 택해 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토리 맥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이 맥주는 나에게 어떠한 태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더 취해야 한다거나, 더 즐거워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감성적인 여유는 앞서 언급한 산토리의 철저한 품질 관리와 신뢰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맥주의 맛이 변했을까 걱정하거나 비싼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품질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 비로소 맥주를 마시는 행위는 진정한 휴식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한 산토리 맥주의 여유가, 계속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산토리 맥주만의 여유와 속도가, 일본 맥주 시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리를 만들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https://www.suntory.com/stories/how-our-story-begins.html

https://www.suntory.com/beer/premium/en/

https://www.suntory.co.jp/news/article/13760.html

https://www.itmedia.co.jp/business/articles/1903/20/news026.html

https://wwwbiz.meijo-u.ac.jp/SEBM/ronso/no11_2/03_OSAKI.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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