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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소맨> 빼앗긴 오타쿠, 변화하는 정체성

이지원2026.02.02

1. 들어가며

 

 이전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오타쿠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꽁꽁 묶여 있을 때가 있었다. 오타쿠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취향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언어이자 공동체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그 경계가 눈에 띄게 흐려져 가고 있다. ‘체인소맨은 바로 그 변화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체인소맨의 원작 만화는 냉소적인 세계관과 비영웅적인 주인공, 노골적인 욕망의 표현 등 오타쿠적 요소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나 2022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며 더 이상 일부만이 아는 작품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작품이 되었다. 또한 2025924일에 개봉한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은 일본에서 개봉 52일만에 5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831000만엔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북미에서는 3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2025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다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157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달성했다.1) 반면 이렇게 글로벌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체인소맨은 SNS 속 하나의 밈으로 소비되며 캐릭터나 작품의 의미가 사라진 채 유행처럼 떠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타쿠들이 가진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묘한 상실감만이 떠돌게 되었다. 모두가 체인소맨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오타쿠가 오랫동안 쌓아온 이해와 해석은 특별함을 잃게 된 것이다. 과연 오타쿠의 정체성은 확대된 것일까? 아니면 대중 속으로 흡수되어 빼앗긴 것일까?

 

2. 빼앗긴 정체성과 흔들리는 오타쿠

 

 가장 먼저 오타쿠란 과연 무엇인지 조사해 보자. 오타쿠의 정의를 찾아보면, 오타쿠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과 같이 같은 소비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본 내 하위문화 유형을 말한다. 이러한 오타쿠에 대한 인식은 일본 사회 내에서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오타쿠를 사회적 소수자로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1989년 발생한 오타쿠 살인자미야자키 츠토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러한 부정적 인식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2013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완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오타쿠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장 큰 경제 연구 및 컨설팅 회사인 노무라 연구소에서는 오타쿠를 12개 그룹으로 분류해 각 그룹의 규모와 시장 영향을 평가하기도 했다.3) 이처럼 오타쿠는 그 의미와 범위가 점차 확장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오타쿠의 범위가 확장되다 보니 이제는 오타쿠를 명명하는 기준이 많이 모호해졌다. 예를 들어, 나루토나 원피스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오타쿠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 있다. 소수만 아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만을 진정한 오타쿠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나루토나 원피스의 유명세를 인식하기 어려우므로 애니메이션의 인기나 장르를 떠나 시청하는 사람 모두를 오타쿠로 인식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유명세와 인기가 다르기에 오타쿠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이 애매한 것이다. 또한 만화책으로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애니화가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더욱 오타쿠의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체인소맨이다.

 

 

 

[출처: 소년 점프 공식 사이트]

 

3. 체인소맨과 변화하는 오타쿠의 정체성

 

 체인소맨의 원작 만화는 기존의 소년 만화와는 꽤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덴지를 보면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 덴지는 기존 소년 만화의 주인공과는 달리 성장 서사의 주역보다는 욕망에 휘둘리는 객체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덴지의 목표는 세계 평화나 인류 구원과는 반대로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여자에게 안기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덴지의 삶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존 소년 만화 클리셰에 질려있던 일부 오타쿠들에게는 큰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또한 체인소맨에서는 주인공 덴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쉽게 죽으며 그 죽음에 대한 상실이 감동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이는 독자에게 감정적 피로감과 배신감을 안기지만, 동시에 신선한 이야기 전개 구조로도 받아들여진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소년 만화에서는 주인공과 오랫동안 서사를 쌓아온 인물들이 갑자기 죽어버리면 그 일로 인해 주인공이 큰 심경 변화를 맞음과 동시에 다음 이야기 전개를 위한 주인공의 성장이 자세히 묘사되었다. 그러나 체인소맨에서는 아무리 주인공과 가까운 인물의 죽음이 발생해도 그 순간 슬퍼할 틈도 없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어가 버린다. 이로 인해 독자는 허무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독자는 캐릭터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지치고 피곤해지지만, 그와 함께 다음으로 어떠한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하기 어려워 이야기가 더욱 긴장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체인소맨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바로 영화적 연출을 들 수 있다. 불필요한 설명을 제거하고 감정선을 말보다 화면으로 전달하는 영화적 컷 구성이 이 작품의 독보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번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에서도 등장한 덴지와 마키마가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 두 인물의 무표정한 얼굴만이 이어지다 마지막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이러한 체인소맨의 영화적 연출은 작품을 보는 일반 독자와 오타쿠 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반 독자는 단순히 만화가 영화처럼 보인다는 생각만 가지고 만화를 읽게 되지만, 오타쿠는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 컷 구성, 카메라 워크, 심지어는 특정 감독이나 작품을 연상시키는 연출 패턴까지 읽어낸다.

 또한 이러한 연출 방식을 토대로 작품을 해석할 때에도 오타쿠와 일반 독자 사이의 차이가 나타난다. 오타쿠의 경우에는 작품을 해석할 때 작품을 철학, 사회학적으로 확장해 읽으며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 분석한다. 그러나 오타쿠가 아닌 일반 독자는 스토리와 감정선에만 집중하며 작품과 사회를 연결해 읽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체인소맨 극장판: 레제편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대중은 등장인물인 마키마레제를 단순히 주인공인 덴지가 좋아하는 인물들이라고만 인식한다. 반면 오타쿠는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상징성이나 은유를 고려해 마키마는 이상주의를 가진 권력자로, 레제는 사회적 억압으로 자유를 빼앗긴 인물로 확장하여 해석한다. 이러한 점에서 체인소맨의 영화적 연출은 오타쿠만의 특별한 해석을 만들어낸다.

 체인소맨은 오타쿠 문화 속에서 큰 인기를 얻은 뒤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 작품의 캐릭터와 장면들은 이야기의 맥락과 분리된 채 소비되었고, 이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달라지게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유명세와 인기를 얻었지만, 원작 만화를 먼저 접했던 오타쿠들에게는 자신들만의 특별한 해석이 사라지며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험이 되었다. 오타쿠와 일반 독자를 구분 짓던 요소들이 점차 희미해진 것이다.

 나 역시 애니메이션화 이전, 친구의 추천으로 체인소맨 원작을 처음 읽었던 독자다. 당시 한국에서는 작품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신선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적 연출 방식에 매료되었다. 장면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오타쿠로서의 뿌듯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고 많은 사람들이 체인소맨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내가 입고 있던 특별한 옷이 유행을 타며 모두의 옷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던 특별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두가 체인소맨을 알고 있는 시대 속 오타쿠가 느끼는 상실감은 단순히 배타적인 감정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오타쿠 정체성이 빼앗기는 과정임과 동시에 오타쿠 정체성을 새롭게 재구성하게 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체인소맨을 통해 오타쿠의 정체성과 기준을 다시금 정의하는 것이다. 오타쿠는 더 이상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작품을 아는 것만으로는 오타쿠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어떠한 맥락에서 해석하고, 작품 속에서 무엇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지가 오타쿠를 명명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체인소맨의 이후로도 오타쿠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오타쿠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지원

 

[각주]

1) 진향희,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 300만 돌파...올해 애니 흥행 2”,스타투데이, 20251112

2) 이윤지, ·일 오타쿠 문화 수용과 이미지 형성 비교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3.

3) Trends in Japan 편집부, "오타쿠 사업이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다", Trends in Japan,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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