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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리뷰] <비비 -플로라이트 아이즈 송-> -오마주와 클리셰 범벅이 왜 주목받았는가-

권민준2023.01.26

1. <비비>의 장점

 

 20212분기에 방영된 (이하 <비비>)은 동일 분기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중 세 번째로 많은 BD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진격의 거인>으로 유명한 WIT STUDIO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에서 최초의 자립형 AI 로봇, 즉 안드로이드인 디바가 미래에서 온 AI ‘마츠모토와 만나면서 100년 후에 있을 로봇들의 반란으로 인류가 괴멸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과거를 바꾸는 100년짜리 계획인 싱귤러리티 계획을 실행하는 내용이다. 작품의 제목인 <비비>디바가 인간 여자아이에게 받은 별명으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이름이다. 작중에서 비비와 디바는 엄연히 다른 인격이지만, 본 글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비비로 통일하도록 하겠다.

 

 일본의 <철완 아톰>에서 <에반게리온>에 이르기까지, SF와 로봇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요소다. <비비>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기에 첫인상이 중요한데, 여러 콘텐츠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던 로봇과 인간 사이의 분쟁이라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터미네이터><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에서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AI에 대한 철학이 주를 이루면서 마치 ‘AI 종합 선물 세트라고 느껴진다. , <비비>는 과거의 클리셰들을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그림 1. 메이크업 기법의 예시

 

 

 SF 클리셰로 내용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독창적인 <비비>만의 매력으로 이목을 끈다. ‘메이크업 기법과 뛰어난 미장센, 연출력, 그리고 작품의 제목에 노래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만큼 수려한 OST<비비>의 매력으로 꼽힌다. 특히 메이크업 기법은 <갑철성의 카바네리>에서부터 시작된 WIT STUDIO만의 개성으로, 채색까지 끝마친 그림에 후처리로 광원 효과와 같은 특수효과를 입히며 화장과 같은 효과를 낸다. 작중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장면에 자주 쓰였는데, 로봇의 바디에 대한 광택 표현, 로봇의 눈인 렌즈의 표현 등 주요 인물들이 로봇임을 상기시켜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림 2. 4화의 격투에서 클린치 장면

 

 

 또 <비비>에서 액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6화의 비행 액션도 뛰어나지만, 단연 돋보이는 건 4화와 9화의 맨손 격투 장면이다. SF 콘텐츠에서 로봇 사이의 전투는 대부분 레이저나 실탄을 이용한 총격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나, 작품의 4화에서는 두 로봇이 특별한 무기 없이 맨손으로 백병전을 진행한다.

 특히 그림 2클린치장면은 전투를 일단락 내는 연출이다. 클린치란 격투기 시합에서 선수들이 서로 껴안는 기술로, 상대의 공격을 봉쇄하기 위한 동작이다. 서로 같은 신체 조건과 프로그래밍(실력)으로 대결하니 위와 같은 교착상태가 발생한 것으로, 로봇 액션에 현실성 있는 맨손 격투를 연출해냄으로 <비비>만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2. <비비>의 오마주와 클리셰

 

 

          

                                                                                        그림 3. 왼쪽부터 마츠모토비비

 

 

 연출과 각본을 살펴보기 이전에 캐릭터에 집중해보자. 주인공 비비는 청록색 머리와 노래하는 기계라는 특징으로 하츠네 미쿠와 닮아있다. 그리고 목에서 빛나는 램프는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등장하는 로봇의 관자놀이의 램프 설정과 유사하다.

 또한 무뚝뚝한 주인공이 감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전투력 높은 여성은 <바이올렛 에버가든>에서 찾을 수 있는 요소다. ‘비비에 대한 첫인상으로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연상된다는 반응이 많을 정도로 특징과 성장 과정이 유사하다.

 

 작품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마츠모토비비의 옆에서 계획을 보조하고 지시하는 존재다. 마치 게임 <포탈2>휘틀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며 외견과 수다스러움마저 닮아있다.

 그림 2엘리자베스는 고철장에서 주워진 존재로, 폐기물에서 건져진 로봇이 활약하는 클리셰는 영화 <리얼 스틸>이나 앞서 언급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도 등장한다.

 이처럼 <비비>는 캐릭터에서 타 작품들의 오마주를 찾아볼 수 있다.

                                                                         

 <비비>의 각본은 영화 <터미네이터>,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와 닮아있다. <터미네이터>에서는 인간의 편에 서서 로봇을 공격하는 로봇이라는 이야기를 채용했고 <슈타인즈 게이트>에서는 과거를 바꾸면서 세계선을 이동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찾는 이야기를 채용했다.

 

 

 

                                                                                          그림 4. <매트릭스>의 오마주 장면

 

 

 

                                                                                         그림 5. <매트릭스>의 양자택일 장면

 

 

 대표적인 연출 오마주로는 <매트릭스>빨간약과 파란약이 있다. 그림 4의 양손에 각기 다른 피가 묻어있는 장면은 그림 5의 장면과 색의 배치까지 완전히 같다. SF의 대표 작품인 <매트릭스>를 오마주 한다는 것은 <비비>가 정통 SF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에서 파란약을 선택해 현실에 안주할지, 아니면 빨간약을 선택해 험한 길을 택할지에 관한 양자택일이 <비비>에서는 파란색 연료의 로봇의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빨간색 피의 인간 편에 서야 할지에 대한 딜레마로 등장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매트릭스>와 달리 <비비>는 선택을 거부하며 에러를 일으킨다.

 이 장면에서 또 살펴볼 수 있는 점은, 인간의 피가 묻어있는 왼손에는 상처가 있고, 로봇의 연료가 묻어있는 오른손에는 상처가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육체는 로봇의 바디와 비교했을 때 더 연약하고 일시적이다. 이는 인간과 로봇의 지속성 차이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야기 막바지의 고뇌를 암시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여기까지 <비비>의 오마주와 클리셰를 알아봤다. 다른 작품에서 본 듯한 요소들만 모아서 만들어진 이 작품이 왜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전적 플롯 즉, 익숙한 설정을 이용한 점은 딱히 비판점이 되지 못한다. 이는 고전이 사랑받는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작법서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이르기를 고전은 끝없이 재해석되고 새로운 세대들이 인생에 그것을 비춰볼 수 있으므로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고전 작품의 사랑받는 요소들을 인용한 작품은 딱히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3. <비비>의 아쉬운 점

 

 그러나 고전 플롯을 재해석, 재배치하기만 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SF 팬들이 항상 원하는 것은 신선함이다. 때문에 <비비>에서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설정이 특히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터미네이터>스카이넷을 오마주한 AI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존재 아카이브가 흑막임이 드러난다. 흑막에 대해서 쌓아 올린 요소가 많지 않아서 이야기의 급전개라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비비에게 아카이브가 부여한 방아쇠, 즉 인류를 말살할 권한이다.

 

 ‘아카이브는 현 인류의 멸망을 원하며 AI들이 인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싱귤러리티 계획을 통해서 경험을 쌓아 올리며 결국 자발적으로 음악 창작 활동을 한 비비가 신인류에 가장 가깝다며 인류 존속의 결정권을 비비에게 넘긴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점은 바로 자발적 창작 활동이다. 두 가지의 허술함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비비의 자발성이 100년의 결과물이 아닌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이라는 점이다.

 처음 마츠모토가 찾아와서 싱귤러리티 계획에 관해 설명했을 때와 전투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것을 권할 때, 비비는 로봇으로서 01의 프로그래밍으로 이루어진 결단이 아닌 고민을 했다. 이는 6화의 <매트릭스> 오마주 장면에서 양자택일에 실패하는 비비와 모순된다.

 

 

 비비만의 ‘AI의 사명이라는 설정은 모든 AI들에게 하나씩만 부여된 거역할 수 없는 모든 행동의 근거라는 설정인데. 애초에 사명이라는 설정 자체가 모호하다.

 AI아카이브의 사명은 인류의 발전을 돕는 것인데, 결국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는 자발성이 아닌가?

 ‘비비노래로 인간들을 행복하게 한다라는 사명에 따라서 노래를 만들었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이었나?

 다른 AI와 관련된 단골 소재를 다루면서 굳이 ‘AI의 자유의지에 관해 다루지 않았던 점은 작중 등장하는 주연급 AI들이 모두 사명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의 허술함은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유일무이성에 대한 빈약함이다. 사실 AI에 의한 작곡은 이미 성행 중이다. 창작 중에서도 특히 음악 분야에서 창작은 오선지 위에 음표를 일정한 규칙으로 그려 넣는 수학의 영역이다. 이는 01의 전문가인 컴퓨터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시를 하나 들자면, 장안의 화제였던 바둑 AI알파고가 있다. 바둑이라는 보드게임의 기존상식을 뒤엎는 플레이로 바둑 세계를 크게 바꾼 프로그램이다.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는 10171제곱으로, 사실상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알파고의 학습방식은 모든 경우의 수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인간들의 대전기록을 분석해서 승률이 높은 플레이의 빅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이를 앞의 비비의 작곡과 비교하면, ‘일정한 영역안에서 끝까지 학습을 이뤄낸 인공지능에 창의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 도출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오선지라는 바둑판 위에서 일정한 규칙의 음표라는 바둑돌을 무작위로 배치하는걸 창의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림 6.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로봇 에스텔라 

 

 

 또한 손쉬운 스토리텔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먼저 작품에서는 영웅의 성격을 지니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웅이란 다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로, 작품의 4화에서 에스텔라는 인간을 끝까지 보호하기 위해서 파괴되고 있는 관제실에 남는다. 주인공 비비도 마지막에는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는 전형적인 스토리 텔링 기법으로, ‘영웅의 존재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된 마츠모토를 다시 언급하자면, 그는 ‘<비비>를 편하게 보기 위한 장치라는 한계가 있다. 비비와 언제나 함께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을 간단하게 해결해버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것이다. 마츠모토가 비비에게 상황을 브리핑하는 장면들은 마치 각본가가 시청자에게 손쉽게 상황을 설명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4. 마치며

 

 어떠한 애니메이션이 다른 작품들을 이것저것 따라 하기만 했다면 그것은 아류작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과 같은 넓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깊이는 섣불리 따라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비비>는 이것저것 따라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주제가 AI, SF이기 때문이다.

 

 AI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실제로 기계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끝없이 논의될 문제다. 최초로 로봇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희곡에서도 작품의 주제는 기계의 반란이었다. 그로 인해 <공각기동대>와 같은 SF 작품들은 나는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을 계속 던져왔다. 그리고 <비비> 또한 그러한 논점을 비비와 디바의 분리를 통해 작품에 가져왔다.

 하지만 <비비>에서 다뤘던 로봇의 자살이라는 주제는 사실 조작된 사건이라는 설정으로 답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정확한 답을 내놓으며 작품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시청자에게 생각할 점만 던져준 느낌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비비>가 오랜만에 등장한 SF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고전 SF 플롯의 재구성을 액션과 음악이라는 애니메이션 트렌드에 맞춰 제작했다. <비비>는 젊은 애니메이션 팬에게는 SF 근본의 소개가 되며, 기존 SF 팬에게는 신선한 애니메이션적 액션과 연출로 인기를 얻는다.

 또한 우리는 SF가 유행하던 과거보다 AI와 밀접해 있다. 로봇을 보는 시선이 과거보다 더 친숙해진 지금, 시청자들이 <비비> 고른 이유는 고전 SF 작품을 보지 않은 SF 입문자거나, SF 매니아가 과거 작품의 연장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비비>13화의 상영시간에서 익숙한 요소만으로 범벅되어 지루할 수도 있지만, 뮤지컬식 구조인 작은 기승전결 구조로 몰입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결말까지 집중할 수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무조건 <비비>. 만약 아직도 <비비>를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꼭 한번 AI 종합 선물 세트를 맛보기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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