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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나레이션을 무시해볼까? 인디 게임 'The Stanley Parable' 리뷰

관리자2020.02.12

필자는 예전부터 메이저 게임사의 게임보다는 인디 게임을 주로 플레이해왔다. 인디 게임이란 인디 음악, 인디 영화 등과 같이 독립을 뜻하는 영단어 ‘independent’‘game’의 합성어이다. 주로 개인이나 단체가 투자회사 등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제작한 게임을 말한다. 인디 게임은 기획이 발표된 후 제작 기간이 길어지거나, 중간에 아예 개발이 취소되기도 하고, 여타 게임보다 질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디 게임에는 흔히 인디 감성이라고 부르는 독창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로, 2015년 발매해 대 히트한 인디 게임 “Undertale”은 전투 중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탄막 슈팅 시스템을 채용하고,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보내주는 “자비” 선택지를 만들어 몬스터를 죽인 횟수에 따라서 엔딩이 달라지는 멀티 엔딩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이렇게 기존의 턴제 RPG의 틀에서 벗어난 “Undertale”은 게임 시스템과 그에 따른 스토리 전개에 있어 개발자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준 인디 게임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퍼즐 게임 “baba is you”는 옛날 아케이드 게임에서나 볼 법한 도트그래픽의, 캐릭터를 문에 도착하게 만드는 일반적인 퍼즐게임이지만, 단어 블록을 옮기며 문장을 완성해 문까지 길을 만들거나, 문 자체를 옮기거나, 캐릭터가 다른 사물로 바뀌어 문에 도착하게 만드는 창의적인 퍼즐을 구성해냈다. “baba is you” 단순한 그래픽과 게임 방식으로 친숙하지만, 문장을 만들어 해결하는 독창적인 퍼즐 구성으로 개발자의 아이디어를 재밌고 완벽하게 구현해낸 인디 게임이다. 마지막 예시인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된다』는 우리가 어릴 적 많이 했던 플래시게임으로, 클릭을 통해 사진을 찍어 전광판에 뉴스로 내보내고 시민들의 행동이 변화하는 매우 단순한 게임이다. 하지만 클릭과 뉴스를 거듭할수록 대중은 점점 미쳐가고, 이를 통해 자극적인 언론과 선동되는 대중의 모습을 매우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이 세 가지 예시 이외에도 수많은 인디 게임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고, 기존 게임의 틀에서 벗어나고, 독창적으로 스토리를 구성함으로써,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게임 속에 구현해내고, 때때로는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몬스터의 공격을 탄막 슈팅으로 피하는 "Undertale", 단어 블럭을 옮겨 문장을 완성, 퍼즐을 푸는 "baba is you"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역시 인디 게임으로, 게임의 진행 방식과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과 태도에 질문을 던진 “The Stanley parable”이다.

 

 

"The Stanley parable"

 

제작 및 배급 : Galactic Café

개발 : Davey Wreden

플랫폼 : PC, OS X, 리눅스

출시일 : 20131017

장르 : 일인칭, 어드벤처, 탐험

지원 언어 : 영어, 독일어 등 12개 언어

평가 : 메타크리틱 메타스코어 88, 유저 평점 80

 

 스탠리 = 플레이어.


‘This is the story of a man named Stanley.’

이 게임은 큰 회사의 427번 직원으로, 427호 사무실에서 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지시대로 버튼을 누르는 업무를 하던 스탠리가 갑자기 컴퓨터에 어떠한 지시도 나오지 않자 사무실에서 나가기로 하며 시작된다. 플레이어가 스탠리를 조종하여 사무실에서 나가면 곧 회사의 모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레이터의 지시에 따라서 동료 직원들을 찾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게 된다.

 

 

『스탠리 패러블』의 시작과 모두가 사라진 회사의 모습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분신인 캐릭터 스탠리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모든 생각과 감정, 느낌과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도 전부 내레이터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내레이터의 지시에 따라 게임을 진행하면 플레이어와 스탠리는 이변이 일어난 회사에서 탈출하는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게임은 스탠리가 회사 밖으로 나가며 생각하는 내용을 내레이터가 읊어주며 끝이 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

 

  

회사에서 탈출하는 스탠리

 

He entered the door on his left.’

 『스탠리 패러블』 속에는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고, 우리는 내레이터의 지시를 따르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다양한 엔딩과 다양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이 게임은 멀티 엔딩 게임으로, 엔딩을 볼 때마다 게임이 다시 시작되며 플레이어에게 N회차의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다.

무릇 사람이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고, 하지 말라고 말하면 더욱더 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내레이터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다른 길을 택하면, 직원 휴게소, 물류창고, 지하실 등 플레이어와 스탠리는 기존의 루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소들을 보게 된다. 내레이터는 지시한 내용대로 이행하지 않는 스탠리와 플레이어를 향해 비난하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은 제안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게임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내레이터를 무시하면 이렇게 가야할 곳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 루트에서, 스탠리는 계속 반복되는 공간을 걷게 된다. 이윽고 스탠리는 자신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의심하게 된다. 아래를 내려다봐도 자신의 발은 보이지 않고, 지나간 문들이 자동으로 닫히는 상황을 인지한 스탠리는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탠리는 잠이 깨길 바라며 눈을 감지만 잠에서 깨지 않고, 스탠리가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자 게임 화면은 어두워진다. 곧 다시 화면이 밝아지며 출근하고 있는 여성 마리엘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리엘라는 출근길에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걷다가 쓰러져 죽은 남자의 시체를 본다. 마리엘라는 남자를 보며 자신은 정상이고, 자신은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변하지 않자, 자신은 누구냐며 절규하는 스탠리.

 

 

또 다른 루트에서 내레이터는 계속해서 자신의 지시를 무시하는 플레이어에게 화를 낸다. 내레이터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평점을 부탁하고, 아예 다른 게임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내 내레이터는 이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플레이어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른 게임 속에 방치한 채 떠나버린다. 게임 속을 방황하는 플레이어에게 돌아온 내레이터는 결국에는 자신을 찾게 된다는 말과 함께 게임을 다시 시작한다.

 

 

플레이어가 계속 내레이터를 무시하자,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평점을 요구하기도 한다.

 

 

parable = 우화


『스탠리 패러블』은 기존 게임의 진행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획되었다고 한다. 개발자는 기존 게임들의 스토리텔링이 A부터 B까지 맹목적으로 내레이터의 지시만을 믿고 따라가도록 설계되어 있고, 『스탠리 패러블』은 이 수동적인 구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한다. 이 의도는 게임 속에서 내레이터의 지시를 무시해야만 여러 엔딩에 도달할 수 있는 게임 방식에 드러나 있다. 또한, 게임 인트로에 소개된 모니터의 지시대로 키보드 버튼을 누르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스탠리의 모습은 기존 게임 속 지시대로 QTE, 게임 속 상호작용을 단순 반복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시대로 키보드를 누르는 반복적인 일을 하는 스탠리

 

 

 『스탠리 패러블』에는 기획 의도 이외에도 다양한 주제와 평가들이 존재하지만, 이 글에서는 두 가지만을 다루고자 한다. 첫 번째로 게임에서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탠리 패러블』은 기존 게임의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내레이터를 거부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플레이어가 내레이터의 지시를 무시하며 게임 속에서 일종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개발자는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한계도 같이 느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엔딩에 나타난다. 플레이어는 내레이터의 지시를 무시하며 게임을 탐험하고 자유를 느끼지만, 역으로 다른 게임에 갇혀 게임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다시금 게임을 진행해줄 내레이터를 찾게 된다. 즉 게임이 얼마나 자유도가 높게 만들어졌는지, 유저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탐험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레이터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하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내레이터의 지시에 다시 따르게 되며 결국 게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내레이터는 돌아와야만 한다.

 

 

두 번째로 다룰 것은 게임성(gameness)에 대한 내용이다. 개발자는 『스탠리 패러블』에 자신의 감정을 심오하게 전달하는 자아 성찰과 게임성에 대한 명상을 담았다고 언급했다. 개발자는 이런 방식은 게임의 본질을 더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개발자가 『스탠리 패러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게임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게임을 이해하려는 플레이어에게 있다고 본다. 이 게임에는 위의 소개한 두 가지 엔딩 이외에도 정말 많은 수의 엔딩, 또 의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실제 우리가 플레이했을 때 다른 게임에 갇히는 엔딩을 보았다면, 우리는 단순히 게임 속 하나의 엔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개발자가 게임 속에서 어떤 주제를 표현하거나 의미를 전달하려고 해도 수용자인 플레이어가 그 요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달되지 않는다. , 필자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의 어떤 주제나 메시지, 의미들을 이해하고 찾아내려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이런 능동적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게임성, 게임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스탠리 패러블』을 마치며.


 

스탠리는 왼쪽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탠리 패러블』은 기존 게임의 진행방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 게임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의 개발자의 생각이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의 방식과 구성으로 표현된 게임이다. 사실 이 이외에도 메타픽션에 관한 이야기나, 도전과제의 부재와 소통 등의 할 이야기가 많은 게임이지만, 필자가 본고를 준비하며 조사한 내용 중 가장 관심 있게 찾아본 내용을 담았다. 흥미가 생겼다면 한번 직접 플레이해보자.

기존 게임의 방식을 부정하는 시도로 플레이어가 자유를 느끼고, 또다시 기존의 방식으로 돌아가며 한계를 느끼고, 개발자의 게임에 대한 심오한 고민이 들어간 독창적인 게임, 『스탠리 패러블』 리뷰를 마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하는데 왜 우린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세히 오래 보는 경우가 몇 없을까? 물론 모든 게임을 악착같이 자세히, 오래 파고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하나쯤은 정말 팬이 되어서 깊게 파보고, 숨겨진 의미나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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