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
VR 컨텐츠 제작과 시연회 후기 (인천대학교 인문대를 무대로 한 공포게임)
제작 멤버: 김경훈, 백승겸, 서현우, 송재우, 오영록
1. 제작 계기
사실 코이를 통해 컨텐츠를, 그것도 VR로 구현하여 제작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컨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었기에 언젠가 컨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실천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습니다. 컨텐츠의 범위가 매우 넓기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조차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퀄리티 높은 컨텐츠를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망한 컨텐츠가 어떤 비판을 받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겁이 나기도 했고요. 희망 직업은 컨텐츠 기획자였지만 입장은 항상 소비자인 채로였습니다. 그렇게 막연히 학교생활만 하던 와중에, 코이의 고문이신 이석 교수님께 진로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컨텐츠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제작한 컨텐츠가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습니다. 무슨 일이건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시도가 있어야 이런 것들을 알 수 있고, 또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죠. 교수님이 해주신 말도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두 달 안에 컨텐츠를 제작해서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 제작 멤버 모집 과정
그렇게 제작을 결심하고, 처음 직면한 과제는 누구와 함께 제작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제작도 의미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코이에서의 활동을 통해 저와는 다른 의견을 많이 접했었고, 이 때마다 든 생각이 혼자서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줄 팀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모일만한 현실성 있고 매력적인 컨텐츠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이 당시에 저는 VR 관련 컨텐츠에 푹 빠져있고, 특히 V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세계 아이돌’의 컨텐츠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세계 아이돌은 팬들이 제작한 VR 컨텐츠를 활용하여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였는데, 놀랍게도 이 컨텐츠의 일부는 비전공자가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비전공자가 제작한 것 치고는 상당히 퀄리티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VR은 컨텐츠 분야 쪽에서도 굉장히 유망했습니다. 접근성의 문제가 있지만 기술이 해결해줄 문제였죠. VR 기기를 스마트폰처럼 쉽게 접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 VR 컨텐츠는 오프라인 컨텐츠보다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기에 VR 컨텐츠 제작은 현실성 있고 미래도 있는 매력적인 일이라 확신했습니다.
VR 컨텐츠 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결심하고 바로 제작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제가 접한 Unity(이하 유니티)라는 개발 툴은 간단한 기능 구현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제작한 프로젝트를 구동하는 게임인 VRChat의 도움도 컸습니다. 원래라면 스크립팅 언어인 C#을 할 줄 알아야 하지만 VRChat에서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스크립팅 언어인 Udon을 제공해서 직관적인 방법으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심자에게는 이것 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강의 영상을 보고 반복해서 만들다보니 약 1달 안에 간단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이제는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이 내에서 관심이 있을 법한 학우들에게 제안을 하고 다녔습니다. 다행히 이 중 다섯 명이 제작에 관심을 보였고, 기능 구현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보고 참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 예시 컨텐츠를 제작했습니다. 한 달간 연습했던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예시 컨텐츠임에도 참 즐겁게 컨텐츠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섯 명이나 관심을 보였다는 것에 감사하여 꼭 만족할 만한 예시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림 1,2. 예시로 만든 기능 중 하나. 막대로 공을 쳐서 원 안에 넣으면 왼쪽 벽이 열리는 간단한 기믹.
예시 컨텐츠로 기능을 보여주기로 한 만큼 VR 공간 내의 디자인과 내용은 버리고 오로지 기능구현에만 집중했습니다. 어드벤쳐 게임의 기믹을 참고하여 여러 기능을 구현하여 “이러한 기능이 구현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컨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이를 본 다섯 명 모두 참가를 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이후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하차하게 됩니다).
3. 제작 초기의 계획 수립 과정
모두 참가하기로 결정되고 곧바로 아이디어 회의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만들지가 문제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기본 바탕은 인천대학교를 무대로 한 컨텐츠였습니다. 아무래도 컨텐츠를 접하게 될 사람은 대부분 인천대 일문과 학생일 테고, 학생들에게 친숙한 공간이 VR로 구현된다면 흥미를 느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팀원들은 내년 신입생을 위한 학생 식당 이용 가이드, FPS 게임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주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인문대를 무대로 한 공포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자 더욱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참신한 것이 정말 많아서 ‘역시 여럿이서 만들기로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그림 3. 제작 초기의 아이디어 목록
이제는 제작이 확실시되었기에 VR 기기를 구매해야 했습니다. VR 입문용으로 많이 쓰이는 ‘Oculus Quest 2’라는 기기를 구매했는데, 정품으로 구매를 하다 보니 거의 6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알바비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컨텐츠 제작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4. 본격적인 제작 과정
이후 아이디어를 종합하여 계획을 구체화하였고,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기능을 만들 공간인 인문대를 구현해야 했습니다.
그림 4. 제작 초기 인문대 401호 강의실의 모습
벽과 천장 등 건물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의자, 책상, 모니터 등 디테일한 모델링이 필요한 물체들이었습니다. 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기초적인 모델링은 유니티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디테일한 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모델링용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일러스트레이터 실력에 준하는 일러스트를 그릴 수 없는 것과 같이 3D 모델링 또한 단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생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료로 모델링 파일을 공유하는 사이트를 사전에 찾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무료 모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적합한 모델링 파일을 구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아예 모델링 파일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제외하거나 정말 기초적인 형태로 제작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 5. 최종 완성된 401호 강의실의 모습
이러한 문제로 인해 팀원들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어떤 것이 구현 가능하고 어떤 것이 구현 불가능한지를 확실히 알려줘야 했습니다. 아이디어 회의가 진행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런 건 구현이 가능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현 가능 여부가 불확실한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대답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시연회가 끝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무리를 하다가 오히려 다른 기능의 퀄리티를 떨어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림 6,7. 인문대 4층 라운지를 구현한 모습. 좌측은 촬영을 위해 밝기를 올린 상태이다. 우측은 VR 기기로 플레이한 게임 화면.
기술적인 문제 이외에도 의견 차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피해를 입는 파트를 만들어 더욱 공포감을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찬반이 갈려서 수십분 정도 회의가 길어졌었습니다. 그리고 핵심 NPC가 그려진 게임 표지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어 지인에게 부탁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그림을 부탁해야 할 지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인문대 옥상을 배경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른 팀원은 인문대 발코니가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옥상을 배경으로 하기로 정해진 이후에도 구도를 어떻게 해야할 지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림 8,9. 의견이 나뉘었던 두 구도. 우측의 구도로 결정되어 제작되었다.
크게는 제가 주장한 인천대학교 간판 문구가 보이는 구도와 옥상 난간 구도로 나뉘었는데, 결국에는 투표를 통해 옥상 난간으로 정해졌습니다. 전자의 구도를 촬영하기 위해 꽤나 애먹었던 저로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의견을 굽히고 팀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앞으로의 협업을 생각하면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에는 버그가 발생해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PC에서는 정상적으로 출력되던 자막이 VR 기기에서는 정상적으로 출력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알아본 결과 VR 기기는 이용자의 시점에 따라 움직이는 자막을 출력하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는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C#을 통한 스크립트가 필요한데, 저의 경우 상기한 Udon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해외의 사이트에서 문제 해결 스크립트 파일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거의 일주일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들은 해결 가능하거나 방법을 바꾸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제작 중이던 게임의 파일이 통째로 삭제된 것입니다. 같이 있던 팀원에게 감히 알리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복구를 해보려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주기적으로 백업 파일이 자동 저장되고 있었고, 이 백업 파일을 확인하기 전까지의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옳지 못한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같이 해결 방법을 강구했다면 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뒤늦게 알게 됐을 팀원의 박탈감을 생각하면, 다시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 시연회 당일
우여곡절 끝에 제작이 끝나고 시연회 당일이 되었습니다. 시연 방식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시연회 참가자 중에 희망자를 받아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다른 참가자들은 강의실 프로젝터 화면을 통해 플레이 과정을 보도록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VR 기기에서 강의실 컴퓨터로 플레이 영상을 송출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사전에 송출 테스트를 끝낸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강의실 컴퓨터가 아닌 노트북 컴퓨터로 테스트를 해서 변수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송출을 위해서는 VR 기기와 PC가 같은 인터넷에 연결되어야 하는데, 강의실의 PC와 WiFi가 서로 다른 공유기를 사용하고 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기에 너무나 후회스러웠지만 그럴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송출 방식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VR 기기에서 노트북으로의 송출은 가능했기에, 노트북 화면을 강의실 PC에 송출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다만 중간 과정을 거치는 송출인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실시간 송출이라 하기엔 너무 큰 지연(약 5초)이 발생했고, 기기에 무리가 갔는지 프레임 드랍(소위 말하는 렉)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플레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다같이 만든 게임을 매끄럽게 보여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이러한 게임 외적 문제 말고도 인게임에서 버그가 발생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책장에 책을 꽂아 기믹을 해결하는 부분에서 책이 꽂히지 않는 버그가 발생한 것입니다. 책을 꽂지 못하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게임이 끝나기 직전 파트였기에 해당 파트를 끝으로 시연을 마치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 파트에 구현한 감사 인사와 제작진 소개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림 10. 문제의 책 꽂기 기믹. 쪽지의 힌트를 참고하여 순서에 맞게 책을 꼽아야 한다.
이후에는 시연회 참가자와의 질의응답과 피드백이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게임의 내용 자체에는 호평이 많았으나, 상기한 문제들과 게임 편의성에 대해서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게임 편의성관련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이번 시연회를 통한 큰 소득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만 보이던 것이 제작자의 입장이 되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6. 컨텐츠 제작과 시연회를 마친 소감
여기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이번 컨텐츠 제작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처음 제작한 컨텐츠가 완벽하길 바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상보다 많은 문제가 있었고, 이는 이번 제작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것들입니다. 제작 실천을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다행인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도 빨리 맞는게 낫다고 하잖아요?
단순히 좋았던 경험도 많았습니다. 팀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는 서로의 아이디어에 놀라기도 하고,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과물이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기믹에 들어간 아이디어들만큼은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알게 된 점은 협업 과정에서 팀원 모두가 100%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만족한 것처럼 보이는 결정의 뒷면에는 ‘만족한 척’하는 팀원이 있습니다. 물론 이번 제작 과정에서도 이런 팀원이 있었고요(저일 때도 있었고, 그 이상으로 다른 팀원일 때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모두가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의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만족한 척’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견대로 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는 팀이야말로 최고의 팀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모든 팀원의 의견을 존중하되, 때로는 주장을 관철할 줄도 알고, 때로는 주장을 굽힐 줄도 아는, 그런 기획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융통성이 되겠네요.
글이 길어졌지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 한 문장으로 후기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작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작의 계기가 되어주신 이석 교수님과 시연회 개최에 협조하고 참가해준 부원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제작에 힘써준 팀원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2023년에는 지금의 팀원들, 새로 들어올지 모를 미래의 팀원들과 함께 더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