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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 히어로 009

이석2023.02.08

 


 

일본판 히어로물이 보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두 말 않고 <사이보그 009>를 추천해준다.
<사이보그 009>는 무기 상인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된 9명의 이야기이다. 블랙고스트라 불리는 무기 상인은 고아원 출신 일본 혼혈, 흑인 게릴라( 초기 설정은 노예), 중국 빈농, 인디언 일용직 노동자, 공산권 망명자, 유괴된 소녀, 한물간 배우, 길거리 깡패 등 세계 각국에서 소외된 이들을 납치해서 인간 병기로 개조한 것이다. 이렇게 선발된 9명은 이름과 국적이 지워진 상태에서 001에서 009까지의 숫자들로 불린다. 그런데 블랙고스트가 이들을 전장에 투입시키기 직전에 9명의 사이보그들은 자신을 만든 블랙고스트를 배신하고 바깥 세상으로 탈출한다. 도망자의 신세가 된 9명은 서로만을 의지하며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지닌 무기 상인들과 사투를 펼친다...
이러한 줄거리를 지닌 <사이보그 009>은 1964년 출간 당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몇 십 년에 걸쳐 속편을 제작하고 있다. 50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사이보그 009>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만화와는 다른 <사이보그 009>만의 메시지와 재미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자.


 X맨
 vs 009

 


 

여기서는 편의상 미국의 인기 만화 한번 비교를 해보겠다. <사이보그 009>와 마찬가지로 의 주인공들도 사회의 비주류 출신들이다. 그들은 독특한 유전자 구조를 지니고 태어난 뮤턴트(mutant, 돌연변이)로, '정상인'과 다른 외모와 능력 때문에 사회에서 차별받게 된다.


이렇게 사회에서 격리된 뮤턴트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배척하는 '정상인'들과 싸워 뮤턴트가 지배하는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뮤턴트가 인정받도록 '정상인'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어느 선택지를 고르는지에 따라 뮤턴트들도 무력 투쟁을 중시하는 그룹과 평화적 공존을 최우선시하는 그룹으로 나눠지게 된다. 은 이렇듯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뮤턴트들간의 대립과 갈등을 그린 시리즈물이다.




 작품에서는 생태적 차이에 인한 차별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은 미국의 인종 차별, 동성애자 차별 문제과 연관지어 논의되어 왔다. 특히 은 흑인 민권 운동을 표상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었다. 예를 들어, 무력 투쟁과 폭력을 통해 뮤턴트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매그네토는 흑백 분열주의자인 말콤 X를, '정상인'들과의 대화와 이해를 촉구하는 프로페서 X는 박애주의자인 킹 목사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선택지가 서로 다르고 양 측이 심각하게 대립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의 뮤턴트들은 한 가지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사회에서 천시되고 소외받더라도 뮤턴트들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돌연변이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 숨겨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감을 회복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당당히 주장한다. 설사 '정상인'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더라도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닌 사이보그 009

  
이에 반해 <사이보그 009>는 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이보그 009들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특이체질을 지니고 태어난 뮤턴트들과는 달리, 사이보그 009들의 몸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이보그들은 자신을 만든 무기 상인들에게 반역하게 되지만 자신의 몸의 반쪽에는 항상 무기 상인이 이식한 기계 장치가 기능하고 있다. 그러기에 사이보그들은 자신의 창조주인 무기상인들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사이보그들이 지닌 능력은 모두 무기 상인이 심어둔 것이기에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대난 자본력을 지닌 무기 상인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기 상인들이 만들어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모순에 빠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이보그들은 환멸감에 몸서리친다. 의 뮤턴트들이 각성하여 원래 자신 안에 있던 잠재력을 당당하게 끌어올릴 때, 사이보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혐오하면서도 마지못해 이를 또 사용하고 마는 것이다. 뮤턴트들과 달리 자기를 긍정하는 일은 항상 더 큰 갈등과 문제를 불러일으키며 사이보그들을 괴롭힌다.


008의 경우




  예를 들어 8번째 사이보그 전사 008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이보그 008은 아프리카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게릴라로 활동하다가 이를 진압하던 무기 상인들에게 잡혀 수중병기로써 개조수술을 받게 된다. (초기 설정에 따르면 008은 원래 추장의 아들로 아프리카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노예 상인에 붙잡히게 된다. 이를 무기 상인들이 구출해주자 008은 안심하게 되는데 그 틈을 노려 무기 상인들은 008을 사이보그로 개조한다.) 아프리카 흑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008은 무기 상인으로부터 탈출한 뒤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008은 서양의 지원을 받던 독재자들과 싸우고 밀렵꾼들로부터 자연을 보호하면서 흑인들의 영웅으로 존경받는다.


 그러던 중, 그는 전쟁 무기 상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부상을 입는다. 긴 수술 끝에 깨어난 그는 더 큰 괴로움에 빠지고 만다. 수중무기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의 피부는 은색 기계비늘로 뒤덮인 것이다. 흑인으로서 강한 정체성을 지니고 자신의 검은 피부를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008은 자신이 더이상 흑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그럼에도 격렬한 싸움이 또 시작되자 008은 자신의 은색 기계비늘에 의존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이보그 009>의 이야기 전개는 자기를 긍정함으로써 잠재력을 깨워 적과 싸운다는 의 서사와 여러가지로 대조된다. 이 자기애와 정체성의 이야기라 한다면 <사이보그 009>는 자기혐오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자신의 능력을 각성시키고 이러한 전투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한다. 그들의 몸에서 "순수"를 찾을 수 없으며 사이보그들은 자기긍정과 부정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쇠사슬 연대




 그러나 이렇게 모순을 지니고 있기에, 마음 속에 절망감이 가득하기에 또 다른 구원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무기 상인들로부터 처음 탈출을 감행할 때, 망설이고 있는 사이보그들에게 리더격인 천재 아기, 001은 말한다.

 

"우리들은 모두 악의 상인이 만든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있어. 그러나 그 쇠사슬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강한 유대감으로 바뀔 수도 있을 꺼야."

 자신의 생명선과 연결된 쇠사슬을 발견하여 이를 어찌하지 못 할 때, 좌절감과 무기력으로 내 안이 가득하여 어떤 행동도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쇠사슬을 끊을 생각만 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쇠사슬의 끝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연결시키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만나다보면 내 안의 쇠사슬도 뭔가 다른 색깔과 형태와 무게로 변형되어갈지도 모른다.

 사이보그008도 그렇다. 그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를 위로한 것은 같은 처지에 처한 사이보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누구보다도 혐오하고 있다. 그러나 또 그렇기에 그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준다. 무기 상인이라는 아버지의 버려진 자식으로서 그들은 횡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사실 008의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식민지 생활로 이미 토착 언어를 잃어버린 제 3세계 문학자들은 자기가 혐오해 마지 않는 제국의 언어를 사용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메이카의 흑인 레게 뮤지션은 자신의 빈궁한 처지를 노래하기 위해 과거 백인들이 이식했던 기독교 찬송가의 음계를 흥얼거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찾고자 하는 성소수자들은 자기들을 조롱하기 위해 "정상인"들이 만든 "퀴어(괴상하고 기묘한)"라는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이보그008가 자기혐오 속에서도 다른 사이보그들과 함께 살아 남았듯이, 그들 또한 주저앉지 않고 제국의 언어와 종교, 혐오발언을 재활용해 말하고 노래하고 또 서로 손을 잡았다.

 나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내 안이 그저 부끄럽고 비참해질 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모든 게 무력할 때, 그럼에도 아니 그러기에 어떻게든 만나고 이야기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꽤나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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