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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중2병? 오히려 좋아 -<웃세와(うっせぇわ)>에 관하여

들어가며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지금으로부터 좀 전부터 일본에서 틱톡을 비롯한 SNS, 그리고 각종 차트를 휩쓸고 있는 한 노래가 있다. 바로 ‘Ado’ 라는 가수의 <웃세와> (うっせぇわ) 라는 곡이다. 곡에 대한 평가는 가지 각색이다. “가사가 반사회적이라 듣기 거북하다.”부터 시작해 속시원한 가사가 마음에 든다.”는 평가까지 정말 다양하다. 이런 개개인의 평가들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날이 갈수록 인기는 식어갈 줄 모르고 더한 히트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의아한 것은 왜 하필 지금이며, 어떻게 2감성으로 점철된 <웃세와>가 대히트를 기록했냐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는 <웃세와>를 제외하고도 일본에서는 진작에 트렌드처럼 사용되고 있던 실정이고, 더욱이 중2병 감성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기 딱 좋은 의제다. 그렇다면 결국엔 뮤직비디오의 연출이나, 노래 그 자체의 매력에 끌렸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웃세와>의 중2병적인 연출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일본에서는 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더 선호할까? 최근 일본에서는 Ado를 비롯한 보컬로이드계에 속하는 가수, 그리고 인디 밴드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팬을 거느린 가수들조차 애니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실정이다. 사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점차 기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우리나라도 이와 별반 다르진 않다. 왜 선호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결국에는 애니메이션의 경우가 메시지의 효율적인 전달과 같은 기존과 다른 용이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후술하겠지만 <웃세와>에서는 상당히 중2병 적이고, 또 기괴한 연출이 사용됐는데 실존인물을 통해 이러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역으로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이유는 애니메이션만이 전달할 수 있는 특이한 질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사 영상에서는 구도와 색, 모양을 아무리 치밀하게 구성하려 노력한다 해도 분명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곤란한 부분의 미장센까지 치밀하게 창조해낼 수 있기에 실사 영상에 비해서 확실히 편리한 매체인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노래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연출에 있어 더욱 용이함을 가지는 부분은 상당수의 아티스트 들에게 있어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 1> 혁오 톰보이 MV


 

혁오<톰보이>를 예시를 들자면 우선 <사진1>을 먼저 봐주길 바란다.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기본적으로 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아니 오히려 불 그 자체인 사람이 더욱 올바른 표현이겠다. 사람이 불타는 형상은 실사로 표현하기엔 윤리적인 부분이 벽이 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라는 곡에서는 사람의 겉옷에 불을 붙여 뮤직비디오의 연출에 사용했다. 잘 감독하겠지만, 이는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연출이기에 윤리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 2>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 MV

 

 

실제 사람을 불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그렇다고 모형을 불태우기엔 움직임이 없으니 사람이란 느낌을 받기도 어렵다. 하물며 CG로 표현하기엔 CG는 너무나 단점이 많다. 우선 실사에 비해서 어색하기에 시청자의 눈에 거슬리는 완성품이 나오기 십상이며, 때문에 몰입에 저해가 되는 방해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대체제로써 2D가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되었을 것이다. 2D3D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익어 있기 때문에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고, 또 만화적인 표현의 차용이 가능하기에 불타는 인물 또한 윤리적 문제없이 역동적으로 잘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 뮤직비디오에서는 역동감을 위해서 로토스코핑 방식을 사용했다. 로토스코핑은 실물 사진이나 움직임을 따 장면을 하나하나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그리는 방법이다. 때문에 <톰보이>에서도 다소 거친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연결되는데, 이는 실로 역동적이며 또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곤 한다. 덕분에 연소되어 가는 사랑과 젊음이라는 주제에 아주 걸맞게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는 그야말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의 장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적대적인 연출

 

그러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라고 다 같은 부류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의 트렌드는 주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추구하거나, 대체로 아기자기한 그림을 차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세와>의 경우는 이를 대대적으로 뒤집은 경우에 해당한다.

 

야후에 게재된 음악 평론가 村上麗奈(무라카미 레이나)’의 보컬로이드에 관한 칼럼에 의하면, 최근 노래의 뮤직비디오에는 빨간색이나 파란색 등 원색을 사용한 경우가 잦으며, 또 대체적으로 청량한 인상과는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른 특징으로는 울림이 있는 가사가 사용된다는 점도 있다.​¹ 때문에 무라카미는 이런 어지럽고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뮤직비디오는 없었다고 형용하기까지 했는데, 본인은 이러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사진 3> YOASOBI - ラブレター MV                                        <사진 4> ヨルシカ - とカプチーノ MV


상기한 것에서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평화로운 분위기와, 혹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림을 선호한다 했다. ‘YOASOBI’<ラブレター>(러브레터)의 경우도 그러한 경우였고 대체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ヨルシカ(요루시카) 같은 그룹의 경우 그러한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주였다.

 

그러나 이는 <웃세와>를 비롯한 상대적으로 음지에 속하는 보컬로이드계에서는 적어도 이는 트렌드로 인지되지 않았다. <웃세와>에서는 기존의 뮤직비디오와는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 연출 면에서 부단히 노력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암울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는 것을 색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기본적인 배경 색감은 검은색, 짙은 파란색을 비롯한 어두운 색감이며, 중간중간 빨간색과 파란색 등 원색을 사용한 강조와 효과를 줌으로써 상당히 정신없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빨간색을 강조하는데 자주 사용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는 다른 색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불안감을 형성할 수 있고 또 긴장감을 형성할 수도 있다. 눈이 조금은 아프겠지만 말이다.

 

 

<사진 5> <うっせぇわ> 웃세와 MV

 

 

여태까지 상기했던 사실이 위 장면, <사진5>에 대부분 포함된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 배경의 색채는 검은색을 사용했고 시청자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군데군데 붉은색을 사용했다. 또 화면을 가리고 또 시선을 분산시키는 붉은색 실은 시청자의 정신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장면 전까지의 장면은 대부분 MV 속 주인공이 카메라를 내려보곤 했는데, 즉 카메라가 주인공을 올려보는 각도가 형성이 되곤 했는데 이는 반항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심리적 압박감을 부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시청자는 장면에서 다소 고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또 상당히 움츠려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카메라는 주인공을 내려다보는 시점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주인공은 상당히 연약해진 상태에 있으며 심적으로는 실은 위로를 바란다는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유추해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폰트에도 공을 들인 바가 있다. 공문서에 사용하는 폰트는 다소 개성을 억압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런 개성을 억압하는 존재 밑에 위치한 주인공은 족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부여받는다. 또한 상기한 붉은 실도 여기에 더해져 확실하게 주인공은 무언가 억압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주인공에게 연민을 품을 수 있기의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유추하건대 뮤직비디오의 제작자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고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 가사도 그런 느낌이지만,) 이는 실은 위로를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는 메세지를 이렇게 적대적인 연출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이렇듯 사용된 모든 것이 후술할 중2병 감성에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2병 감성

 

그렇다면 여기서 중2병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병이란 다들 알다시피 중학교 2학년 및 그 전후 시기의 행동을 병적으로 보는 멸칭의 일종이다. 허세성의 자아도취 의식에서 오는 청소년 시기 특유의 반항적인 태도를 일종의 병적인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청소년의 행위는 특유의 자아도취 의식에서 오는 것이라 하지만, 당시의 지적 수준으로는 이는 청소년 나름의 저항 의식과 일탈행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름대로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일종의 사회 운동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병적인 행위가 아니라.

2병이란 단어가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사실 꽤 예전부터 존재하던 용어에 속하지만, 그 개념과 정의가 똑바로 확립되었음에도 미디어에서는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다. 2병이란 단어는 한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비로소 미디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2012) 라는 일종의 러브 코미디 애니메이션이 그 사용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본 애니메이션은 중2병을 해학적으로 단순히 재미의 요소로 활용했는데 따라서 중2병 특유의 사회 저항 의식은 비교적 저평가 되었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캐릭터에 중2병 요소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학적으로 소비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스노비즘²과 염세주의에 빠진 듯한 캐릭터가 자주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는 과거 애니메이션에선 필수 요소로써 간주됐는데 이를 통해 히트를 점치기도 했다. 예시를 들자면 <소드아트온라인> (2012)키리토라는 캐릭터도 이에 속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런 중2병이 현재에 이르러 해학적으로 소비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해학적으로 개그의 용도로 소비되기 시작하며 비로소 조명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 본질에는 특유의 허무의식과 염세주의적 인식이 잠재해 있었다. 그래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또 그런 미디어를 양산해내는 데에는 무엇보다 중2병이 정말 필수적인 요소로써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그에도 능통하긴 했지만 말이다. <웃세와>에서도 이런 사회를 비판하는 의식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2병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병이라 함은 적절히 연출에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아주 최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특히나 오타쿠라는 계층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다. 사회적인 인식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띄고 있었다. 이는 안타깝지만 일련의 사건 사고가 있었기에 불가항력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그 인식은 개선됐지만. 그리고 서브컬쳐는 사회에서 소외되는 오타쿠계층이 선호한다. 따라서 중2병 특유의 사회비판적 인식이 작품에 작용한다면 소외 계층의 심금을 울리는 데에도 적절히 작용했을 것이고 그만큼 높은 효율을 이끌어내는 데엔 사실상 불가능한 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외되는 계층에게 있어 이런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중2병 감성은 사실 일종의 혁명으로써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브컬처에서는 이 중2병 감성을 잘 활용하면 보다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때늦은 2 적인 감성? 오히려 히트?

 

그러나 이제 와서 중2병적인 감성은 너무나 고대의 문물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 비슷한 가사에 비슷한 감성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식상하단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웃세와>에서는 상기한 것과 같이 대대적으로, 애초부터 중2병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연출적으로 부단히 노력했다. 하고서 안 한 척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애초부터 티를 내는 사람이 더욱 호감인 편이지 않은가? <웃세와>도 이와 비슷하다.

또한 곡이 처음 나올 당시는 한창 일본 내부에서 코로나로 인한 불안이 더욱 커져가고 있을 시점이기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딘가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부분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항상 그러했듯 학업에 관한 스트레스를 어디에 해소할 곳이 없었으나, 코로나의 경우 때문에 심리적 고뇌가 더욱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코 이 또한 적은 영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웃세와>는 이런 중2병적인 감성을, 시대에 빠르게 적용시켰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작은 것들을 비롯한 부스럼을 긁어주는 일종의 사이다처럼 인지되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요약하자면, 최근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유행인 것은 그만큼 연출에 있어 편의성과 효율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는 실사 뮤직비디오에 비해 윤리적인 장벽이 낮으며, 시각적인 충족에도 이점을 가진다. <웃세와>는 단순히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부드러운 그림을 활용하던 기존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와는 약간 다른 맥을 띈다. <웃세와>에서는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효과를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특히나 그 중에서 중2병 감성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중2병 감성은 기존에 너무나 자주 사용돼 왔기에 자칫하면 식상하단 느낌을 받기 십상이었다. <웃세와>에서도 이점을 인지한 것인지, 애매하게 중2병을 섞는 것보단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을 선택했다. 또 시대적으로 음울한 시대이며 또 억압받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중2병 감성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는데 적절하게 작용했다.

쉽게 말해 <웃세와>는 불행한 것일지, 운을 타고난 것일지, 시대를 빠르게 반영한 곡이라는 것이다. 단순 시대를 잘 타고나서 운 좋게 히트한 곡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고뇌하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연출을 적절히 사용했기에 그 성공이 더 돋보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 “새로운 예술은 새로운 삶을 약속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삶의 재발명은 사회적인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모더니스트의 믿음이다. 역사적으로 대중음악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했고, 지극히 사적으로 여겨졌던 취향이란 것은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감각과 함께 자기 자신의 취향과 그 취향을 가진 우리가 중요하다는 감각도 주었다.”

 

<웃세와>도 이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식상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중2병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 대놓고 뮤직비디오의 연출에 활용한 것은 지금의 관점에선 새로운 예술로 받아들이기 충분할 것이다. 또 음울했던 시대를 극복하게 하고, 모두 하나의 노래를 부르게 하며, 이런 사회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우리를 하나로 결속했다고 보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웃세와>라는 노래의 가치는 노래 한 곡 그 이상의 가치를 넘어 포스트코로나 시대 사회적 정신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 村上麗奈, 2021, ‘Adoうっせぇわのヒットは必然だったボカロシ整理 (검색일 2021.09.04.) https://news.yahoo.co.jp/articles/6d1cd988ae0c65d1f916a9cb625cdda19c9ecd63

2)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 본 글에서는 만물에 비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 전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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