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igation contents

이세계, 중세라는 공간

2019.11.23


키워드 : 일본 이세계물, 판타지 소설, 공간으로서의 중세, 톨킨, 세계관 ,클리셰, 현실도피

 

이세계,중세라는 공간

 

드워프 (Dwarf: 난쟁이)도시와 로도스도에서 최대 규모인 대지 모신 마파 신전이 있었고 그 외에는 산기슭에서 시작된 침엽수 숲만이 울창했다. ” -『로도스도 전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신기한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많다. 푸르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유럽 여행사진에서 본 듯한 웅장한 석조 성이 보였다. 이건 마치 판타지 같다.” -『제로의 사역마』

 

현 상황이 판타지 이세계라고 가정하고, 문명은 정석대로 중세풍쯤 되나. 딱 봐서는 기계류가 없지만 지면의 포장 작업 수준은 나쁘지 않아.”-『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몇 번을 봐도, 아무리 봐도, 하늘에, 섬이 떠있었다. (중략) 하늘을 나는 것은 드래곤이었으며, (중략) 무슨 게임에라도 등장할 법한 판타지 세계의 경치.” -『노게임 노라이프』

  

(애니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속 마을 풍경)​1


 

 석조로 된 웅장한 성과 신전, 울창한 숲과 초원, 중세 문명의 도시와 다양한 종족, 하늘을 나는 용. 일본 이세계물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맞이하는 세계에 대한 묘사들이다.

주인공들은 대개 현실세계인 일본에서 무언가의 이유로 이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그 공간은 현실세계와 다른, 마치 게임에서나 볼듯한 판타지 세계라고 묘사된다.

판타지 세계하면 많은 이들이 위와 같이 서양 중세풍 배경과 경이로운 자연이 펼쳐진 공간을 장면을 생각한다. 그러나 판타지(Fantasy)는 특별히 서양 중세시대와 마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옥스퍼드 아동문학 사전에서는 판타지는 특정작가가 있고,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하면 비현실적인 환상세계에서의 이야기 즉, 중세배경이 아닌 현대나 미래를 배경으로 해도 판타지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배경으로 사용하고 이제는 클리셰라고 여겨지는 중세 판타지 세계, 왜 많은 이세계 작품들이 판타지로서 중세시대를 모티브 삼고 그 작품들을 독자들은 감상하는 것일까?

 


판타지의 거장 톨킨의 중간계 (Middle-Earth)


 이세계 작품들이 중세시대 배경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이세계물 이전에 나온 판타지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의 모습은 J.R.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의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판타지의 대부라고도 불리는 J.R.R 톨킨과 그의 작품인 『호빗』, 『반지의 제왕』의 시리즈는 누구든 한번쯤은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반지의 제왕』은 중간계 샤이어라는 곳에 사는 평범한 호빗(Hobbit- 드워프와는 다른 또 다른 난쟁이 종족)이 절대악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종족과 원정대를 꾸려 모험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톨킨이 중간계(Middle-Earth)라고 칭하는 독자적인 2차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톨킨이 창조한 세계는 언어와 역사까지 마련되어 있어 마치 과거에 실제 있었던 것 같이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배경은 중세 유럽풍이며, 소설과 영화에서 읊는 시는 마치 신화를 보는 듯하다.

 톨킨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공상을 좋아했다고 한다. 자라서는 문헌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되었다. 영국과 북유럽의 언어와 그 언어들로 쓰인 문학작품에 흥미를 가졌고 대학에서 고대영어와 중세 영어를 가르쳤다. 그렇게 톨킨은 중세 문학작품과 신화에 빠져들었고, 당시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판타지 문학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톨킨은 ‘영국을 위한 신화’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런 신화를 만들기에 착수한다. 전공을 살려 세계관 속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을 만들어내면서 신화적 세계를 창조했다. 그 결과 톨킨이 만들어낸 그만의 새로운 신화적 세계는 큰 성공을 이뤄냈고 이후 많은 작가와 작품이 톨킨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영감을 받아 독창적이고, 다양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했다.

 


톨킨작품과 이세계의 연결 ,이세계물이라는 장르

                               

 물론 톨킨이 판타지의 시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판타지의 모습은 톨킨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의 이세계물도 톨킨의 판타지세계와 구조에서 유사한 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세계물의 클리셰라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설정으로는 ‘서양 중세풍경, 평범한 인물의 활약, 선한 주인공과 이세계 악의 대립’등이 있다. 이 모든 설정은 톨킨에서 유래한 것이다. 톨킨의 작품에서는 서양 중세 풍 배경을 바탕으로 평범하고 평화롭게 지내던 한 호빗이 마을 밖을 떠나 절대악과 대항하고 있다.

 

 

(좌: 반지의 제왕 영화 장면​2/ 우: 로도스도 전기 trpg 배경​3)

 


 현재 많은 이세계물의 작품이 클리셰처럼 똑같은 작품만을 배출한다고 이야기 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넓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세계물뿐 아니라 판타지의 작품은 대부분이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메드센(Linda Lee Madsen, 1976)은 판타지의 기본 요소 6가지를 정의했는데 마법, 다른세계들, 선과악의 대립, 영웅적 행위, 특별한 등장인물, 판타지적 도구 등, 6가지를 포함한다면 전통적인 요정이야기(Fairy Tale-요정을 비롯하여 환상의 생명체와 얽히는 이야기로 유럽 여러 지역의 민담, 신화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식이다.) 혹은 하이 판타지(High Fantasy-현실 세계와는 다른 창조된 세계를 무대로 펼처지는 작품)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세계물은 하이 판타지와 같은 정통 판타지와는 구별 짓는 경향이 있는데 가장 큰 차이점으로 ‘게임 시스템’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이세계 작품에서는 하이 판타지와 배경이 유사하지만 전개 과정에서 게임과 같은 시스템이 도입 되어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한다던가 전투 속에서 경험치를 획득해 강해지는 등 게임적인 전개가 주를 이루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 『게임적 리얼리즘』에 따르면 게임과 같은 소설인 라이트 노벨이 쓰여지게 된 것은 1980년대의 TRPG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TRPG란 테이블에서 플레이어들이 얼굴을 맞대고 가상적인 세계관에서 활약하는 캐릭터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면서 플레이되고, 주사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는 롤플레이 형식의 게임을 말한다.  

  20세기 톨킨을 발화점으로 판타지 문학이 많이 등장하면서 그런 문학작품에 영감을 받아 TRPG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판타지물의 명작이고 뾰족한 귀와 아름다운 엘프의 모델을 만든 작품인 로도스도 전기는 그러한 TRPG의 리플레이 작품이다. 로도스도 전기의 작품은 작가가 TRPG의 플레이 내용을 소설화 한 것으로 이를 시작으로 게임의 방법론을 도입한 게임같은 소설이 등장했고, 이후 라이트노벨의 기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세계물은 하이 판타지와 그 영향을 받은 TRPG의 구조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세계물, 오타쿠의 현실 도피의 공간



 현대문물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현실과는 다른 문명의 세계인 이세계의 삶 속에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 논자들은 이세계물은 현실에서 불만족을 느끼는 이들에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즉, 주인공이 취직에 어려움을 겪거나, 동정이거나, 은둔형 외톨이처럼 현실에서 소외되어있다. 그리고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캐릭터에 이입하게 만들고, 현실에서는 채울 수 없는 결핍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현실도피의 공간으로 판타지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세계물의 배경과 공간이 단순히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처인걸까?

 

 이세계물 만큼이나 톨킨의 판타지 작품들도 20세기 당시에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부정적 평가를 들어야 했다. 1960년대 반지의 제왕의 인기는 서구 산업국가의 중산층 출신으로 사회에 불만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국한되어있고, 오래 지속하지 못하며(나이젤 윔슬리 기자) 이세계물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이 현실도피의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9세기 일상적인 삶을 묘사했던 사실주의는 문학의 중요한 시조였고, 톨킨이 살았던 20세기 소설도 사실주의 색채를 띠었다. 하지만 톨킨은 사실주의 문학과 20세기 현대사회를 거부했다. 위에서 보았듯이 오히려 현대 사회보다 판타지와 신화를 극찬하며 중세 판타지를 즐겨쓰고, 시골 산책길을 걷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따라서 많은 비평가들은 톨킨을 보수주의적이라고 평가하고, 톨킨이 현실을 거부했기 때문에 중세 판타지를 썻다고 이야기했다.

​ 하지만 톨킨은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판타지를 바라보았다. 전쟁을 직접 겪어보고, 자신이 좋아했던 풍경들이 급속하게 바뀌고, 기계화가 진행되기에 현실세계에는 불합리한 면이 많지만 판타지로 이 부정적인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판타지는 마음속에 그린 상상력과의 내적조화가 구현된 세계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견해를 얻도록 한다. 그리고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 속 부정적인 것들에 맞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기쁨을 주고, 해피엔딩을 통해 위안을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에 건강한 정신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판타지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욕망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지만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부정적인 도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치유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본의 이세계물이 모방의 반복에 진부한 설정임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은 현실세계의 결핍을 판타지 공간을 통해 치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참고 문헌>

이수경, 『판타지 문학의 비밀』,중앙미디어 북스, 2018.
전홍식, 박애진,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Fantasy』,북바이북,2015.

마이클 화이트, 『톨킨-판타지의 제왕』,강승욱 역, 작가정신,2003.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 이은미 역, 문학동네, 2007.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장이지 역, 현실문학,2012.
 

<사진 자료 출저>

1)공식 pv 영상 일부- https://youtu.be/Bwq7HxrHiZU

2)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31795

3)https://fujimi-trpg-online.jp/game/rodoss.html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