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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여름'

김수현2018.12.12

 

신카이 마코토의 여름

내리쬐는 햇빛, 찌르르 울리는 벌레 소리, 흐드러지는 짙은 녹음, 아마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을 되돌아 보면 항상 그 안에 여름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가 그리는 여름에는 애틋함이 어려 있다. 

 

우주에 나간 미카코가 그리워 것은 노보루와 함께 한 여름이며(별의 목소리/2002),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에서 두 소년, 한 소녀는 탑에 함께 날아가자는 약속을 하며 영원할 것만 같은 여름방학을 보내다. 그리고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소녀가 사라지자 남은 두 소년 또한 갈라서지만 그 여름날의 약속을 위해 다시 모인다. <초속 5센티미터/2007>에서는 초등학교 여름 방학을 마지막으로 멀리 떨어져 버린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서로를 오랫동안 그리워한다. 그리고 최신작이자 가장 다른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는 <너의 이름은/2016>에서도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바뀐 계절이 여름이다. 서로 왔다 갔다 하는 여름을 보내며 그들은 상대에 대해 더욱 알아간다. 이후 엇갈린 시공간으로 이해 둘 사이의 애절함은 더욱 극대화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 전반에는 그리움이 흐르는데, 이 감정은 함께 해 소중했던 시간이라는 조건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는 그 배경으로 여름을 선택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짚어 보자면 여름은 주요 인물(주로 두 소년, 소녀)가 접점이 이미 존재 했거나 생겨나는 지점이다. 그 여름이 이어지는 동안에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깊이 키워가지만 여름이 끝나감에 따라 거의 필연적으로 그들이 헤어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갈라진 그들은(주로 남자의 시선에서끊임없이 여름의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회귀하려 한다. 이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서사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왜 하필 여름에 대한 그리움인가?

왜 그는, 하필 그리움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여름을 사용했을까? 일본에도 사계절은 있고, 그 개성이 뚜렷하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속에 다른 계절 또한 등장한다. 하지만 애틋함의 시간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오로지 여름뿐이다. 

 

우선 그의 작품 속 주요인물들이 대부분 학생들이라는 점에 주목하길 바란다. 학생에게 일상이란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동급생과 방과후 활동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에는 방학이 시작되어 그러한 일정한 행동들이 중단된다그렇게 되면 평상시 주위를 감싸고 있던 환경이 학교와 친구에서 다른 곳으로 전환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특히나 여름 방학은 겨울방학보다 활동성이 더 높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운 변화가 싹트기 쉽다.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 속에서 이 단절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등장인물이 이전부터 바래왔던 인물과의 관계를 형성하거나 발전시키는 장치로서 쓰인다. 그렇게 여름에 무르익은 관계나 감정은 여름이 지나가고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나 끝맺음을 맺게 된다(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고뇌하는 장면은 주로 가을이나 겨울이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계절에 또 하나의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덕분에 신카이 마코토의 빛을 이용한 여름 묘사와 감정 묘사가 맞물려 큰 시너지를 보였다.

 

추억에서 지금으로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지는 여름이란 주로 고시엔(: 일본의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를 이르는 말)여름 방학으로 인한 친구와의 여행, 마츠리와 더불어 불꽃놀이 등 매우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의 이벤트들이 주로 다루어져 동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한편,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속에서 여름이란, 한밤중 편의점, 단둘이 걸어가는 한적한 거리에 울리는 벌레 소리처럼, 정적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시간이다. 초기 작품에서는 여름으로의 회귀에 대한 욕망과 그리움이 서사를 끌고 가는 주요 감정으로 사용된다. 나중 작품에서는 여름은 현재가 되어 그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서 일상이 와해 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하는 배경이 된다. 전자는 정적인 여름, 후자는 동적인 여름이 적용 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성향이 바뀌어 가며 여름의 역할 또한 바뀌게 된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장편 애니메이션 중 세계계의 대표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에서의 여름은 함께 보낸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써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그리워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들지만, ‘여름 자체는 과거에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또다른 여름은 오지 않는다. 그저 그 때의 여름으로의 회귀를 추구할 뿐이다. 이는 신카이 감독의 다른 초기 작품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반면 작품의 방향성이 확연히 달라진 <언어의 정원/2013>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서사부터 전혀 다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구두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년 타케루가 여름 장마철의 어느날 비를 피해 들어간 정자에서 정체불명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만 내리면 그곳에서 만나며, 여름이 지나감에 따라 둘의 관계는 깊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실은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다가설수록 가까워진 듯 했던 둘의 관계 또한 흔들리게 된다. 전작들이 여름을 과거에 박제해 놓았다면 <언어의 정원>에서 여름은 러닝 타임 내내 짙은 녹음과 비를 뽐내며 생동감을 뽐낸다. 여기서의 등장인물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인 것이다. 소중한 시간을 상징하고, 비라는 장치를 통해 단절이 이루어진 것은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이들의 관계는 여름과 함께 종말하지 않는다. 비록 다소의 갈등은 있지만 결국 이해와 소통을 통해 그들만의 결론을 내리고 다음 계절로 나아간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 작품인 <너의 이름은>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변하고 있다.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 불리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으로 들어서게 만든 그의 작품이, 세계관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연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인한 것인지, 또 그의 변화가 애니메이션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여름을 현재로 끌어온 그 변화는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지각변동을 천천히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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